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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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20.12.18)
공정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람 사는 세상’으로 향하는 발판을 제안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상과 꿈을 조명한 이광재 의원의 「노무현이 옳았다」를 읽다가 불쑥 위안스카이가 떠올랐다. 중국의 문화를 형성하는 근본 원리 가운데 첫 키워드 ‘영웅’은 도대체 자신들에게 무엇일까 하는 논의에서 위안스카이가 차지하는 반면교사로서의 영웅 생각이 났던 것이다.
위안스카이는 요즘에도 한국의 화교들 사이에서 유능한(?) 인물의 대명사처럼 불린다. 사실 그는 대단히 유능해 그 외에는 누구도 북양군단(당시 최대의 군사조직)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우선 그는 인간 관계를 처리하는 데 능수능란했다. 낯가죽이 두껍고 속은 시커멓으며 수단은 악랄하기에 대적할 자가 없었다. 일차적으로 그는 남의 비위를 맞추는데 고수였다. 유리한 형세를 쫒아 마치 갈대처럼 움직였다.
모순된 권력 집단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거리낌없이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을 했다. 상대를 꾀기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베풀고, 찍어 누르고 싶으면 채찍을 맘껏 휘둘렀다. 권력자 이홍장에게 충성하다가 곧 영록이라는 실세에게 붙었고, 심지어는 개혁주의자 강유의를 형님으로 모셨다. 결국 그들 모두를 배신하고 힘을 손아귀에 넣자 아예 자신이 황제에 등극하고자 했다.
당시의 최고권력자 서태후에게 20만 냥의 백은과 대량의 견직물을 바쳐 환심을 사고, 영록에게 뇌물을 바칠 때 온갖 것을 다 구했고, 곧 경친왕에게 빌붙을 때는 첫 만남에서 10만 냥짜리 은표를 바치고 매달 용돈으로 은표를 보내 신임을 독차지했다. 사단장이었던 장작림이 그의 집무실에 전시돼 있던 금시계를 눈여겨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선물하는 수법을 썼다. 역시 사단장이었던 풍국장에게는 자기 집 여자 가정교사를 시집 보내 평생 동안 스파이 짓을 시켰는데 그 대가가 요즘 돈으로 따지면 조 단위였다.
부하 졸병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채찍과 당근을 유감없이 썼다. 명령에 불복종하면 전체 사병들 앞에서 처형, 명령을 잘 따르면 능력과 무관하게 진급시켜 주고 상금을 내렸다. 각 병영에는 그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조석으로 향을 피우며 절하도록 했는데 그 대가 역시 정성들이 사병들에게 집 한 채를 그냥 내줄 정도였다.
위안스카이의 그 유능한 재주가 발휘되지 못한 예가 있었다. 농림총장 송교인이 낡은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는 남몰래 송 총장의 몸 치수를 알아내 고급 양복을 한 벌 마련하고 선물로 교통은행에서 발행한 50만 위안(우리 돈 약 100억 원)짜리 수표를 함께 보냈다. 송 총장이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보내주신 양복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총통 어르신께서 주시는 것이니 사양치 않겠습니다만 보내주신 50만 위안은 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장래에 퇴직하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으며 책을 읽을 생각입니다. 그러니 돈이 있어도 쓸 데가 없습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편지 봉투에 50만 위안 수표가 들어있었음은 물론이다. 결국 송교인을 암살하라는 명령이 경찰 수령 조병균에게 내려지고 조병균은 상해시 조폭 응계형에게 부탁, 다시 응계형은 무사영이란 하수인을 시켰다. 그 후 위안스카이는 관계자 모두를 독살해 버린다. 중화민국의 초대 대통령 위안스카이의 진면목은 마침내 음식 이름을 바꾸는 것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정월대보름날 먹는 음식인 ‘위안샤오(元宵)’, 길거리에서 파는데 그 소리가 마치 위안스카이가 소멸된다는 뜻의 ‘위안샤오(袁消)’처럼 들려 이를 ‘탕위앤(湯圓)’으로 바꿔 부르게 했던 것이다. 극도의 신경 쇠약과 우울증으로 밤잠을 못 이뤘던 그의 말로는 바로 악행을 일삼았던 업보였다.
인간관계에는 기교의 문제도 있겠으나 그보다 중요한 경지의 문제가 있다. 한마디로 이상적 경지. 미국 대통령이었던 레이건은 유년시절에 축구를 하다가 그만 이웃집 유리창을 깨뜨렸는데 이웃집에서 요구한 배상액이 당시 계란 125개를 살 수 있는 액수. 레이건은 이 돈을 벌기 위해 열한 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6개월 후 갚았다고 전해진다. 노무현, 위안스카이, 레이건을 떠올리면서 일국의 최고권력자가 되기까지, 그리고 이후의 경지를 함께 생각해본다.
기호일보
2020.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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