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근조화환’의 애도와 생명 존중을 성찰해야(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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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21. 4.22)
‘근조화환’의 애도와 생명 존중을 성찰해야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근조화환’의 의미는 여러 가지를 함축한다.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에서부터 죽음을 직시하고 생명과 인간에 대한 존중 의식을 기린다. 잔인한 달, 4월을 맞아 서울시교육청 앞에는 ‘근조화환’이 늘어섰다.
‘서울 교육은 죽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함께. 그 이유가 ‘제2기 학생인권 종합계획’에 성소수자 학생 지원과 보호가 담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혐오와 차별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고 특히 성별 정체성을 명시한 조례는 서울이 유일하다는데 이에 대해 죽음이라는 격렬한 표현을 사용하다니 어이가 없다.
이웃 나라 중국에서는 요즘 ‘죽음의 교육’이 컴퍼스에서 단연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서울시교육청 앞에 걸려 있는 그 내용과 정반대다. 수업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죽은 사람이 되거나 죽은 이의 지인이 되는 장례식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이 수업을 받아 삶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계기가 됐으며 한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중국의 장례식 수업은 사실 꽤 오래됐다.
14년 전 기초대학 임상의학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산동대학에서 처음 시작한 이후 해가 갈수록 호응도와 참여도가 높아져 요즘에는 온라인 강의에 무려 1만5천여 명이 몰렸고, 베이징대를 비롯해 전국 20여 개 대학에서 커리큘럼에 포함할 정도로 커졌다.
이에 대해 산동대 왕윈링 교수는 "의대생들이 시신 해부에 대한 두려움과 초조함을 극복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이제 많은 학생들이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삶의 절실함을 인식하고 존엄사나 안락사 같은 죽음을 공론화했고, 자신들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느낀다"고 하면서 "학생들의 심리 문제 해결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여러 어려움에 대한 저항력을 크게 높여 줘 학생들의 자살률을 낮추는 데도 기여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교육을 초·중·고까지 확대하고 일반인들도 받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근래 사회적으로 인명 경시 풍조가 심각하며 사소한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증가하고 있으며 인구 노령화에 따른 노년층 증가도 이런 필요성을 더욱 강화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국인민대표대회의 대표이자 베이징대 종양병원의 주임의사는 공개적으로 ‘죽음 교육을 널리 펼쳐 생명을 존중하자’는 요지의 연설을 하면서 "교육을 통해 올바른 인명·인권의식을 길러야 한다"고 했었다.
이후 코로나19 탓에 대면 교육은 크게 늘어나고 있지 않으나 온라인을 통한 교육은 광범하게 실시되고 있다. 성소수자 학생들이 마주하는 혐오와 차별을 없애자는 노력에 ‘근조화환’으로 공격하는 풍토와 죽음의 교육으로 삶의 진지함을 일깨우고 모두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의미를 되새겨 주려는 노력이 찬사받는 이 극명한 차이는 뭘까?
전국 지자체 가운데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 학교에서 생존 이상의 꿈을 가질 여유를 제도적 장치로 만든 곳은 서울을 비롯해 경기·광주·전북·충남 등 5개 지자체에 불과하며 이 가운데 이번 서울시교육청의 계획이 가장 선도적 내용을 담고 있어 ‘근조화환’ 바로 옆에는 여러 인권 단체들이 앞다투어 모두가 안정하고 행복한 학교 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진정으로 교육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다양한 학생들을 시험 선수로 획일화하고 소수자 학생들을 배제하는 작금의 현실 아닌가. 혐오와 차별은 전염이 빨라 서로를 부추기고 점점 잔인해진다.
그리고 폭력으로 바뀌어 생명에 대한 경시는 물론 온갖 사회 범죄의 근원이 된다는 건 세상이 모두 목도하고 있는 바다. 혐오와 차별의 트럼프식 정치가 낳은 암울한 현실은 요즘 미국에서 벌어지는 총기 난사나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으로 드러나고 있다.
영화배우 메릴 스트리프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상대에게 굴욕을 주고 싶어하는 본능, 힘 있는 사람이 특권과 능력으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피해자로 만드는 일"이라고 감동적인 연설을 했었다. 제도적 정비는 물론 스스로를 일깨우는 지난 삶의 ‘근조화환’을 새삼 생각해 본다.
2021.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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