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보궐선거가 남긴 상흔은 정치권은 물론 시민들에게도 적지 않다. 우리의 정치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가 하는 탄식과 차악을 선택해야만 하는 선거는 과연 여기서 끝낼 수 있을 수 있나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정치 기술자들은 1년도 채 남지 않은 대통령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누가 유리하고 불리한지 열심히 계산하고 있으나 시민들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5년마다 치러지는 ‘성군(聖君) 대망론’의 유권자 의식도 갈수록 퇴색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 미래는 과연 어떤 것이지, 당면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경쟁은 아예 사라진 것이 아니냐는 우울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니 말이다. 오로지 돈 풀기식 공약과 기득권의 이익에 봉사하는 규제 완화 약속만 현란하게 늘어놓은 선거는 거의 최악이다. 


흔히 정치가 일반 대중이 그 존재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마치 많은 이들이 깨어나기 이전 새벽녘에 쓰레기를 치워주는 청소차처럼 돼야 이상적일 텐데 지금 거대 양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여름 대낮에 아파트 단지에서 수박을 싸게 판다고 떠들어대는 트럭의 확성기처럼 요란하다고 하면 과언일까. 물론 정치가 도덕군자들이나 선량한 사람들의 몫은 아닐 것이다. 이기적으로 탐욕스럽고 저급한 인물일지라도 시스템에 의해 통제될 수 있으면 충분히 받아 들일만 하다. 


사회가 개인의 감정이나 판단 혹은 도덕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움직일 때 미래를 안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지 않은가. 시스템은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대기 번호표’와 다를 바 없다. 누구에게도 특권을 주지 않고 공정하게 기회를 준다는 데서 우선 바람직하다. 그리고 그 번호표는 공정에 앞서 무엇보다도 어느 정도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예측 가능하게 해준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 아닌가. 


불확실성을 없애 가시거리가 꽤 먼 맑은 날의 고속도로처럼 예측 가능성을 높여 줘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희뿌연 안개 속에 구도심 도로처럼 예측 불가능이 훨씬 더한 상황을 강요(?) 받고 있지는 않은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번 4·7 보궐선거가 보여준 불신과 불안과 불만의 폭과 넓이는 어느 정도일까.


사람들마다 똑같을 수야 없겠으나 대략 정치는 정치답지 못하게 비틀거리고 있으며 법치는 무너진 거나 다름없으며 LH 투기사건에서 보듯 제 몫만 챙기면 된다는 인식은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고 하는 데 큰 이견이 없을 터. 


그렇다고 경품 뽑기 식으로 5년의 기대와 나름의 소망을 팽개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대통령선거는 그동안 시민의 기대와 달리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아니 정치라는 이름에 몰려든 그들이 진영으로 결집하면 양자택일(양자구도)로 되고 진영이 분열되면 다자택일(다자구도)이 됐다. 중도의 유동성이 커지면 당연히 다자구도로 나타났다. 그 좋은 예를 35년 전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씨 등이 출전한 대선의 ‘4자 필승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랜 군정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았을 노태우는 ‘김영삼·김대중 두 야당 지도자의 분열로 내가 승리할 것’으로 여겼고, 김영삼은 ‘노태우와 김종필의 보수세력이 분열했으니 내가 이길 것’으로 점쳤으며, 김대중은 ‘TK(노태우)와 PK(김영삼)가 표를 나눠 가질 테니 호남을 기반으로 한 자신이 가장 유력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결과는 민주세력의 분열로 결말 나고 말았다. 


둘러보면 세상 어디서나 현실의 불평등과 부자유를 옹호하는 반민주적 악(惡)과 그 동조세력은 상상 외로 거대하고 힘이 세다. 착한 가면을 쓰고 있을 뿐 약자를 갈취하는 나쁜 짓을 서슴없이 행동으로 옮긴다. 약자의 삶이 달라지는 걸 역차별이라고 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이 평등해지려는 사회 변화를 유난 떤다고 하는 이들, 그들의 언어가 얼마나 공격적이고 해괴하고 몰상식한데도 유권자 다수의 마음이라고 포장돼 그야말로 ‘개념 없는 댓글처럼’ 세상을 오염시키고 있다. 


이제 권력자가 위임 받은 이상으로 도취되지 않도록 하는 ‘백신’을 유권자가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 물론 요원한 기대일지 모른다. ‘성군(聖君)’은커녕 총애하는 막내딸의 직언도 끝내 듣지 않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에서 보는 그런 권력이 안 되도록. 


2021.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