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남재경대학의 간리 교수는 중국 경제 내수활성화 목표에 대해 "민생 개선 정책을 펴고 저소득자와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을 지원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산주의 일당 독재국가에서 나오기 힘든 발언이기도 하려니와 의견의 가치가 진위 여부를 떠나 ‘좋아요’라는 SNS의 숫자로 매겨지는 오늘날 토양에서 보면 신선한 느낌마저 든다.
개혁·개방 이후 40여 년 중국의 청년 세대가 겪은 굴곡진 삶은 우리 한국의 경우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는 가성비 높은 엘리트 고등교육 시대는 갔고, 도시에서 주택 구매가 중산층 진입 여부를 가르게 된 것도 거의 흡사하다. 이미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을 감당할 수도 없고 좋은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어진 탓인지 늘 성적에 조바심하면서도 조금만 수업이 재미 없다고 느끼면 무심하게 스마트폰으로 고개를 떨구는 단절된 세대의 모양새까지도 너무나 닮았다. 1990년대 이후 출생한 한 중국 대학생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 옆에 있는 젊은이와 똑같다.
"지금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세계 2대 강국으로 굴기한 중국의 모습이 정말 자랑스럽긴 합니다만 나의 삶이 펼쳐질 미래는 어디에 있고 어떻게 될지는 절망적인 기분만 듭니다. 기성세대는 우리에게 잔뜩 짐만 주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 학생의 고백을 이웃 나라의 현실이라고 무덤덤하게 듣고 있을 수만 있을까? 우리는 어떠한가? 한민족이 얼마나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민족인가를 고대 저 멀리 짙은 안갯속까지 더듬고 또 더듬어 화려하게 입증하고, 동유럽이나 지중해 연안까지 가서 흔적을 찾아내어 더욱 광택을 내도록 한다.
식민지 시절 피해와 고통은 슬그머니 덮어버리고 그런 세월이 사실 빛나는 오늘을 위한 준비로 보면 어떠냐고 둘러대거나 그걸 자양분 삼아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가운데 민주주의와 번영을 함께 이뤘다고 설명한다. 철저한 과거 기억을 조작하는 것이다. 일본이라고 조금 다를까. 그들은 언어 조작의 명수다.
렘지어 교수까지 동원(?)해 ‘전쟁의 성 피해자’를 ‘위안부’ 정도로 묘사하는 건 일상화된 수법이고 아예 ‘매춘부’로 전락시킨다. 나의 결점은 최소화하고 상대의 결점은 극대화시키는 기술을 발휘한다.
상대방 이미지에 덧칠을 하거나 일부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과장하기도 한다. 결국 이미지만 남기고 절실한 문제가 무엇인지는 사라지게 만든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멋있게 재기했다는 모습을 세상에 자랑하려고 유치한 올림픽이 코로나19로 연기되고 이제는 제대로 치를지조차 희미한데 엉뚱한 핑계나 조잡한 이유로 궁여지책을 정당화한다. 능력대로 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며 무능력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일본 웅비론의 잔재를 끊임없이 현대 버전으로 바꾸면서 세계의 일등국가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 속에서 젊은 세대는 절망과 자포자기 모습으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오늘날 한·중·일 젊은이들에게 불어닥친 이 암울한 현실에서 새삼 떠오르는 인물이 이순신 장군이다. 간혹 이순신의 최후에 관해 갖가지 억측을 내거는 부류도 적지 않으나 최후의 일전을 치르기 전날 밤 이순신은 배 위에 올라 향을 피우고 빌었다. "하늘이시여. 적을 물리치게 도와주소서. 적이 물러가는 날, 제가 죽음으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다음 날 이순신은 선봉장이 돼 왜선을 추격했다. 뱃전에 우뚝 선 채 화살과 돌멩이가 쏟아지는데도 의연하게 서서 독전했다. 측근이 위험하다고 말렸으나 그는 자리를 지켰고 끝내 갑자기 날아든 흉탄에 쓰러졌다. 이순신은 마치 죽음을 택하듯이 했다. 왜적이 물러간 다음 자신과 사랑하는 부하들이 애매한 죄명을 뒤집어쓰고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헤아린 것이다.
"왜적과 간신배가 세상을 해치고 어지럽히는 현실에 분개했고 동시에 고래(이순신)는 작은 도랑(현실)에 오래 머물 수가 없다는 걸 아셨다"는 「백호전서」의 기록은 결코 틀린 추론이 아니다. 이순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이 구질구질한 세상에서 제 입으로 공치사하는 정치지도자들 때문에 한·중·일 젊은이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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