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원규(65회) 문화칼럼/인터넷 음악카페(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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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08. 9.30)
인터넷 음악카페
/이원규 문화칼럼
며칠 전 대학동기 시인의 새로 이사한 집필실에 들렀다가 인상 깊은 것을 남겨 주고 왔다. 친구는 몹시 고마운 선물이라며 기뻐했는데 돈 한푼 안 쓰고 5분쯤 시간을 들인 작업의 결과였다.
그날 필자가 평생 고전음악을 들어온 것을 알고 있던 시인 친구는 집필실에서 좋은 음악을 듣고 싶다고 하면서 포터블 CD플레이어를 사다 놓을 것이니 인터넷 판매사이트에서 명음반 CD를 30장쯤 골라 달라고 했다. 그래서 시인이 이사하면서 바꿨다는 새 컴퓨터 앞에 앉았으나 음반 판매사이트에 접속하지 않았다. 우선 빠른 인터넷 처리속도를 갖고 있고 비교적 좋은 스테레오 분리 스피커를 달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공짜로 무한정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카페블로그를 연결해 아이콘을 바탕화면에 올려놓았다. '이동활의 음악정원'과 '친애하는 아마데우스'였다.
'이동활의 음악정원(다음 카페)'은 음악전공 교수가 음악동호인들을 위해 마련한, 가입회원이 12만명이나 되는 감상실이고, '친애하는 아마데우스(다음 블로그)'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분이 만든 소박한 감상실이다. 둘 다 주인이 올린 음원이 대부분이지만 가입회원들이 올린 음원도 많다. 거기 접속하면 마음대로 수천곡의 정통 클래식음악 속을 헤엄칠 수 있다.
그것들은 경이롭도록 광대한 음악의 밀림이다. 찾아가기는 쉽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접속해 검색창에 위의 카페 블로그 이름을 치면 곧장 연결된다. '이동활'은 배호와 나훈아의 대중가요, 명시와 명문장, 회원들의 자작시, 테마사진, 경치사진 등 고전음악 외에 수많은 정보가 있어 조금 복잡하지만 교향곡만 600편에 달하는 등 음원이 많고 별도 검색창이 있다. 거기 '신세계 교향곡'이라고 치면 수십개의 음원이 뜬다. '친애하는'은 간결하게 음악만 수천 곡이 있다.
2~3년전 두 카페를 발견하고 서재 집필 작업 중 거기 의지하며 지내왔다. 여러 날 원고에 매달려 손끝도 움직이기 힘들게 지쳤을 때 더 큰 위안은 없었다. 집에 수백장의 CD와 연주실황 DVD, 그리고 성능이 괜찮은 재생기기를 갖고 있지만 그게 더 편리하다.
그날 필자와 시인 친구는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제18변주를 들었다. 랩소디의 선율에 젖은 채 가을빛이 짙어가는 서울의 가로수들을 내려다보며 진한 커피를 마셨다. 반 클라이번, 백건우, 율리우스 카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엘리소 비르살라제 등 협주자와 오케스트라가 다른, 1950년대부터 1990년대에 제작된 명음반들로 바뀌었는데 그것들을 찾느라 애쓰지 않았다. 비교와 선택을 할 수 있게 한꺼번에 모아놓은 파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저작권이 보호되는 때에 어떻게 음원 공유서비스가 가능한지 궁금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학 초년생 시절 종로2가 영안빌딩에 있던 음악감상실 '르네상스'에 드나들던 추억도 더듬었다. 그때는 좋은 음악듣기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지금은 참 편리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인터넷은 시인과 작가에게 이율배반이라고 결론했다.
시인작가는 시집과 소설책이 안 팔리는 원인 중의 하나로 인터넷을 지목하며 그게 없던 시절을 그리워하는데 반대로 그 혜택을 입고 있는 것이다. 음악카페를 찾아가 위안을 얻는 것도 그렇지만 탈고한 원고를 잡지사·신문사로 송고하는 일, 역사편찬위원회나 국립도서관에 접속해서 자료를 찾는 일 따위 글쓰기에 관한 편리도 있다.
지난 세 번의 겨울 그랬던 것처럼 다시 겨울이 오면 소설 한권쯤 쓰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버리고 동면하는 곰처럼 강원도로 깊숙이 숨어들어가고 싶다. 똘똘한 노트북 컴퓨터 하나 들고 가면 된다.
인터넷이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고 하는데 예술까지도 뒤흔들고 있다. 문자언어를 종이책에 찍어 많은 향수자에게 보내던 문학은 위축되고 시간예술로서 일시성과 순간성의 한계를 가졌던 음악은 향수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반세기 후쯤에는 인터넷이 예술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궁금해진다.
]소설가 이원규 문화칼럼
종이신문 : 20080930일자 1판 10면 게재
인터넷출고 : 2008-09-29 오후 8: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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