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좋은 책 소개 - 라마나 마하리쉬, 『나는 누구인가』-펌글
본문
라마나 마하리쉬, 『나는 누구인가』
이 책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책이다. '자아 탐구'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며, 그것을 통해 진아(眞我)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며 내용이다.
행복이 진아의 본질이요, 무욕은 '진아가 아닌 것을 구하지 않음'이고, 지혜는 '진아를 벗어나지 않음'이다. 해탈이란, '구속되어 있는 자기 자신의 본질을 탐구해 들어가서 자신의 진정한 본질을 깨닫는 것'이다. 진아는 신이다. 라마나 마하리쉬에게 있어서 모든 길은 진아로 통한다. 중요한 것은 진아밖에 없다.
체계화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여러가지 '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의 육체, 그 육체를 조종하는 마음, 영적인 정신, 관찰자로서의 나, 주변 사람에게 반향된 모습으로서의 나, 상대적 역할로 규정지어 지는 나, 무의식으로서의 나, 상상 속의 나 등 '나'라는 것은 여러가지 다른 속성이나 모습으로 설명된다. 그 각각의 나는 서로 떼어낼 수 없고 구분할 수 없는 종합적인 하나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긴 하지만, 한 측면만을 분리해야만 설명이 가능한 이질적인 구성 요소들의 비총체적인 개념적 합이기도 하다.
라마나 마하리쉬가 말하는 진아(眞我)라는 것은 개아(個我, 개체적 자아)와 대비되는, '이 우주 삼라만상에 내재하는 유일한 실체'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의 진정한 근원'이다. 서양 철학에서 말하는 범신론적 신의 개념과도 흡사하며, 사람이 곧 하늘이요 나의 마음이 곧 너의 마음이라는 우리네 사상과도 일맥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사상은 그의 고유 사상이라기보다는 인도 철학의 한 특징이다.
육체는 허상이고 정신만이 실재하는 것이며, 그 정신적인 부분에서 비본질적인 그림자들을 제거하고 남는 부분이 진아이다. 이 초월적인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모든 힘을 써야 하며, 그것만이 의미있는 것이고, 그래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물어보며 '자아 탐구'를 해야 하고, 진아가 아닌 부분을 발견하고 제거해나감으로써 진아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진아는 유일한 실체이며 실재이고 본질적인 것이다. 그것이 유일한 진리이다. 나의 육체, 생활, 그릇된 인식 등이 진아를 가리고 있으며, 우리가 이를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진아는 본래부터 존재한다. 깨달음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진아는 시작도 없고 따라서 끝도 없다. 시간과 공간도 무의미하다. '자신이 이미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새롭게 얻을 수는 없다.'(p.91) 진아는 이미 깨달아 있다.
'자아 탐구'는 명상과는 다르다. 명상은 대상이 있는 것이고, 자아 탐구는 주관만 있는 것이다. '마음이 일어나는 근원'을 주시하는 것이다. 행위나 노력이 아니고, '존재의 과정'이며 '무위의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생각을 억압하여 무아의 상태에 도달하는 요가와도 구분이 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그런 질문을 하는 자는 누구인가, 다른 질문을 떠올리는 나는 또한 누구인가 등으로 계속해서 본질속으로 근원속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진아에 도달하면, 에고가 제거되고 순수한 본질, 유일한 실재만 남는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형식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호흡 조절이나 자세 등도 초기 수행에 도움을 줄 수는 있겠으나,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고 있다. 철저히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쉽고 단순하다. 진리라는 것은 그렇게 쉽고 단순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또한 진리라는 것은 하나로 설명될 수는 없다. 진리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 가까우며(진아처럼), 끼워다 맞추어서 하나의 설이나 론으로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포함하는 것이 진리이므로 그대로 남겨두어야 할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다.
현상계, 몸 등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다소 걸린다. 인도 철학의 특징적인 면이긴 하지만, 종교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서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눈에 띈다. 나는 나의 몸을 부정할 수 없다. 분리될 수 없는 요소가 있기도 하고, 신과 같은 존재인 나(=진아)도 중요하지만 고통을 느끼는 하찮은 몸뚱아리도 내겐 중요하기 때문이다.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나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 육체와 분리된 상태를 상상하기 어렵고 몸의 구속을 받고 있는, 현재를 살고 있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라마나 마하리쉬가 말하는 '개아'의 개념에 가까운 비본질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수행 방법은, 인도 철학에서 말하는 진아가 아니라 하더라도,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내 삶을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것은, 라마나 마하리쉬가 이야기하는 '진아'에 이르는 것만큼의 중요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진정한 자아라는 것은 여러가지 그림자들로 가리워져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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