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영어 축소’ 정책으로 망가지는 중국의 내일은…(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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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22. 1.27)
‘영어 축소’ 정책으로 망가지는 중국의 내일은…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10여 년 전 중국에서 ‘영어 보급’ 정책은 가히 선풍적이었다. 베이징 하계올림픽을 세계 무대에 우뚝 서는 중국으로 이끄는 신호탄이자 세계인을 품으려는 역동적 자세로 높이 평가됐다.
거리의 표지판이 영어로 바뀌고, 잘못된 영어 표현은 대대적으로 수정됐다. 영어교육도 강화됐다. 당시 중국 언론 매체들은 일제히 "대중적으로 올림픽의 인지도를 크게 향상시키고, 베이징의 영어 수준과 문명화를 보여 주는 대규모 운동"이라고 보도하면서 찬사와 격려를 서슴지 않았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찬가가 울려 퍼졌던 것이다.
그랬던 중국이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영어 축소’ 정책을 펴고 있어 많은 이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베이징 지하철 노선도에 나온 영어 표기 위에 중국어 로마자 발음 기호 스티커를 덧붙이는 그야말로 옹색한 식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예를 들면 역(station)을 중국어 站의 발음기호 ‘zhan’으로 바꾸고, 공원(公園)은 중국어 발음 ‘공위안’을 ‘Gongyuan’으로 바꿨다. 중국어 발음을 로마자로 표기한 것은 ‘핀인’이라 하는데, 70년 전에 개발돼 지금도 중국의 초등교육에서 쓰이고 있다.
이렇듯 영어 축소 내지 지우기 정책은 대부분의 중국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는 소식도 들린다. 핀인이 없어도 중국어를 읽는 데 불편함을 느끼는 건 노령층과 일부에 그치는 반면 중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은 핀인을 읽을 수 있겠으나 본뜻을 알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zhan’에서 station을 연결시킨다는 외국인이 핀인을 발음할 경우 중국인이 알아들을 수 있다는 약간의 이점 말고는 실용성도 크지 않다.
이렇듯 정책이 바뀌고 세계어인 영어를 몰아내려는 듯한 일이 벌어진 까닭은 뭘까? 2013년 집권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시대 이후 중국 정부는 중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강화한다는 명분과 활동을 적극 전개해 왔다.
지난해 국가교재위원회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교과과정 및 교재에 반영하라"는 지침을 내놓을 때 "사회주의를 발전시킬 후계자를 육성하려면 시진핑 사상으로 학생들의 두뇌를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국가 통제 하에 정신적으로 단련된 인재를 길러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를 견고히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이제 베이징은 2월의 동계올림픽을 개막하면 올림픽 역사상 하계와 동계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세계 최초의 도시가 된다. 세계 유수의 국제도시로서 우뚝 자리매김하는 이 행사를 앞두고 벌어진 해프닝(?)의 진정한 의도는 과연 뭘까?
"중국인들은 핀인을 읽을 필요가 전혀 없어요. 거기다가 외국인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 정책이 무슨 효과가 있겠어요. 미국과의 갈등이라는 말도 있지만 현명치 못한 일입니다.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중국의 문화를 알리기보다는 오히려 중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 아닙니까." 당국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이미 반대를 위해 결집하는 대학생들의 모임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향후 전개 양상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중국의 관영 언론 광망데일리는 아래와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외부 세계를 향해 열린 나라일수록 외국인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정상적인 임무다. 현대인은 오늘날 돌이킬 수 없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상호 교류는 필수 사항이 된 지 오래다. 우리 역시 외국인이 이해하기 쉽게 시설을 만들고 표지판을 세우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중국에서 관영 매체란 우리 민주주의 언론과는 전혀 다르다는 게 상식이다. 검열을 거치지 않더라도 중국 공산당의 기관지와 별로 다를 바 없는 기사와 논조인 것이다.
어찌 보면 언론이라기보다 공산당 홍보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 홍보지(?)에서조차 세계화의 흐름에 역행하고 상호 교류라는 의미를 퇴색시켜 결국 국제시대의 낙오자가 되겠다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강력한 권력이 작동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흐트러지기 시작한 조짐인가?
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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