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조작’의 망령이 어른거린다. 위험하다(퍼온글)
본문
퍼온곳 : 기호일보(21. 1. 6)
‘조작’의 망령이 어른거린다. 위험하다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모 대통령 후보 부인의 주가 조작은 작전 세력의 손털기를 한 것뿐이다"라고 말하는 이가 꽤 많다. "여당과 제1야당 대통령 후보의 지지율은 과연 민심을 반영하고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을 가져본 이도 꽤 많을 것이다. 미래·민생 토론은 뒷전이고 ‘사과밭’이 된 대선판 아닌가 말이다.
조작의 위험은 더 커졌다. ‘조작’은 이미 사회 도처에서 전방위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최근 중국에서 일어난 ‘시청률 조작 사건’은 상징적인 예가 될 법하려니와 우리의 처지에서도 곱Tlq어 볼 만한 의미가 있다.
내용은 이렇다. 중국에서 방영된 드라마의 90% 이상이 시청률 조작에 가담해 작품의 질은 저하되고 제작사들의 사정은 크게 악화됐으며, 시청률 조작 전문업체들은 갈수록 권력화됐다. 마침내 당국은 ‘통계관리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방침을 세워 조작을 막기 위해 주무부처가 빅데이터를 활용한 시청률 조사 방법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자 곱지 않은 시선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국가가 통계를 빌미로 인민 통제를 강화하고 당국의 입맛에 맞는 드라마만 방영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시청률 조작은 어제오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미 중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유수의 방송국에서도 몇 차례나 있었던 일이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3년 전 드라마 ‘낭도’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우리 돈 133억 원을 풀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때부터 시청률 공신력은 크게 저하됐다.
하지만 시청률 조작은 계속됐다. 심한 경우 중국에서 제작비로 받은 185억 원 가운데 시청률 조작 경비로 167억 원을 쓴 경우가 지난해도 일어났고, 방송국마저 조작업체의 하수인이 된 경우가 있었다. 광고비 때문이었다고 한다. 시청률이 높으면 더 많은 광고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언론대학 류옌난 교수에 따르면 시청률 조사는 대략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우선 시장 크기에 따라 무작위로 표본가구를 추출한다. 그 다음 이들에게 필기로 기록할 수 있는 다이어리 카드 또는 단말기를 지급한다. 표본으로 추출된 가구원은 TV를 볼 때마다 자신의 시청행위를 여기에 적는데, 조사업체가 이를 회수해 집계한 후 통계를 낸다.
절차상으로는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요는 그 다음의 수법이다. 선정된 가구에 업체는 현금을 주거나 생활용품을 주는 등 꾸준히 사례하면서 자기들이 원하는 결과를 적어내도록 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아예 서버 해킹을 해서 가구원이 단말기 버튼을 눌러 선택한 결과를 조작해 수치를 입맛대로 조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질이 낮은 드라마가 1회당 9천200만 원 정도를 지불하면 시청률 순위 3위에 진입하게 해 주는 건 비밀도 아니라고 한다.
결국 이런 조작이 당국의 개입을 부르고 관계 부처에서도 이 기회에 영화처럼 국가 주도로 시청률 조사에 나서겠다는 것이 결말이다. 영화 전문가들은 익명을 전제로 이 조치에 강력한 유감을 표하고 있다. "한때 우리 영화가 전 세계에서 호평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뛰어난 작품이 안 나온다. 영화를 국가가 좌지우지한 이후에는…."
10여 년 전인가, 한 유력 정치인이 이런 말을 했다. "주먹을 쥐고 악수할 수는 없잖은가." 마찬가지다. 조작이 판치는 곳에는 어떤 기대치도 생겨날 수 없다. 사이비들 세상이 될 뿐이다. 오늘의 한국 대선판에도 ‘조작’이니 ‘허위 사실 기재’니 ‘사기’니 하는 못된 언어들이 난무한다.
이 땅에서 진실이니 희망이니 하는 건 언제나 소수의 몫이어야 할까. 아닐 것이다. 먹고사는 것 이상으로 소중한 가치는 얼마든지 많다. 왜 내가 나서야 하는지, 왜 내가 그 자리에 앉아야 하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초박빙의 지지율 경쟁이라고 해서 허구한 날 사대방의 그늘진 곳이나 뒤져 경쟁적으로 폭로할 게 아니라 국민의 아픈 곳을 쓰다듬어 주는 비전과 정책을 내걸고 과감히 승부해야만 우리에게 희망이 생긴다.
누가 더 밉고 더 위험한가를 경쟁하는 판에서는 결국 조작된 지지율이 자리잡게 된다. 김근태는 「희망은 힘이 세다」에서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 그렇다.
202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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