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원규(65회) 수필 [창랑의 물이 맑으면]
본문
수필 창랑의 물이 맑으면
이 원 규
얼마 전 친구의 집에 갔다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를 원문으로 쓴 오래된 서예 병풍을 보았다. 나는 여러 고교 동창생들 앞에서 그것을 척척 읽고 해석했다. 친구들은 ‘자네, 소설만 쓰는지 알았는데 한문 실력이 대단하군.’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한문 실력이 대단치는 않은 나는 그 순간 국문과의 은사 이병주 선생님과 중국 무한(武漢)의 풍광을 떠올렸다.
내가 무한에 처음 간 것은 10년 전이었다. 나는 그때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과 조선의용대의 자취를 찾는 일에 푹 빠져 있었다. 조선의용대는 무한에서 창설되었고 일본군을 상대로 처절한 도시 방어전을 치렀다.
강이 넓은지 땅이 넓은지 모를 정도로 물이 많은 아름다운 도시. 중경에서 장강 삼협 명승지를 타고 내려오는 유람선도 이 도시에서 멈춘다. 인심도 순후하고 여인들도 아름답다. 나는 ‘강남 삼대 명루’의 하나라는 황학루(黃鶴樓)로 갔다. 드넓은 장강(長江)을 굽어보는 언덕에 우뚝 선 이 누각은 천 년 동안 중국 역대왕조를 거치며 개축됐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황학이 날아오르는 듯한 형상으로 그 자태가 매우 아름답다. 5층으로 전체 높이는 50미터쯤 될까.
2층에서 황학루와 관련 있는 시문들을 적은 작은 책자를 파는데 나는 그것을 샀다. 이백(李白)의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황학루에서 광릉으로 가는 맹호연을 이별함)>을 난간에 기대서서 읽었다.
故人西辭黃鶴樓 벗은 황학루 서쪽에서 작별하여
煙花三月下揚州 아지랑이와 꽃이 피어나는 삼월에 양주로 내려간다
孤杋遠影碧空盡 외로운 배 돛대 먼 그림자 푸른 하늘 끝으로 사라지고
唯見長江天際流 오로지 장강이 하늘 끝까지 닿음을 바라볼 뿐이네
당송 시대에 만들어진 친구를 이별하는 시는 거의 헤어지기 전 지어져서 친구에게 헌정되었다. 그러면 떠나는 친구는 화답시를 쓰고. 내가 산 시집에는 맹호연의 시는 없었다. 이백의 시는 멀리 떠나는 친구의 배를 가물가물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며 서운함과 아쉬움을 읊은 것으로 그래서 더 곡진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시를 읊조리며 동호(東湖)로 갔다. 동정호(洞庭湖), 항주 서호(西湖)와 함께 중국 삼대 호수라는 동호. 나는 세 호수 중 동호를 마지막으로 보는 셈이었는데, 대학 시절 통째로 외웠던 <어부사>의 현장이라 가슴이 설레었다.
굴원은 높은 관직에 올랐다가 지나치게 청렴 강직하여 무고를 받고 추방당했다. 그는 음울한 얼굴을 하고 호반을 거닐다가 늙은 어부를 만났다. 어부는 굴원에게 세상사에 순응하기를 권했고 굴원은 거부했다. 그러자 어부는 ‘창랑의 물’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가 버렸다.
국문과 2학년 때 이병주 선생님이 한문강독을 맡으셨다. 선생님은 중간고사 때 출제 문제를 공개하셨다. <어부사>를 무조건 외워 쓰라는 것이었다. 황소 뿔처럼 고집 센 우리 선생님, 못 말리는 우리 선생님.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2백 자가 넘는 <어부사>를 달달 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제자들 한문 실력을 키우려는 생각보다는 이 글이 가진 교훈을 일생 동안 음미하게 하려는 뜻이었던 것 같다.
나는 굴원과 어부의 마지막 문답이 제일 좋다.
굴원이 말하기를 ‘나는 들었소. 새로 머리 감는 자는 반드시 갓을 털고 새로 몸을 닦 는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어찌하여 맑고 밝은 몸이 더러운 것을 받아 들인 단 말이오. 차라리 물에 빠져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낼지언정 어찌 몸에 세속의 티끌을 뒤집어쓴단 말이오.’
어부는 빙긋이 웃으며 배의 바닥을 두드려 장단 맞춰 노래를 부르며 갔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으리라.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닦으리라.’ 그리고 기어이 가 버리니 다시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굴원이 거닐었던 동호는 생각보다 큰 호수였다. 관광지도에는 호수 면적이 30평방킬로미터가 넘는다고 나와 있었다. 호반에 몇 개의 누각이 있는데 나는 굴원을 기념하여 만든 행음각(行吟閣)에 올랐다. 그리고 난간에 걸터앉아 늙은 어부처럼 중얼거렸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으리라.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닦으리라.”
세월이 흘러 지금 나는 그때의 스승님보다 나이가 들고 인생의 이비(理非)를 아는 몸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의 선생님처럼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어부사>를 만날 때마다 인생의 교훈을 화두처럼 던져 주신 은사님의 깊은 뜻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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