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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red>이원규 단편소설 [강물은 바람을 안고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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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강물은 바람을 안고 운다
이 원 규
침대 4개가 달린 컴파트먼트 침대열차에 러시아말 방송이 울려 퍼졌고 안내자인 니꼴라이가 통역했다.
“십 분 뒤에 하산역에 도착합네다.”
세 사람은 아래층 침대 위에서 벌였던 한 점에 1달러 짜리 고스톱 판을 걷었다. 다섯 시간 반 동안 판을 벌여 김민규 프로듀서가 70~80달러를 따고 카메라 기자 조경호는 50달러쯤을, 이현식은 25달러쯤 잃었다. 이 정도면 심심풀이는 잘한 셈이군. 이현식은 무릎 밑에 깔고 앉았던 남은 판돈을 지갑에 넣고 배낭을 챙겼다.
조경호는 16밀리 이엔지 카메라를 능가한다는 6밀리 고성능 디지털 캠코더의 작동을 확인하고 배낭을 꾸렸지만 이현식과 김민규는 그냥 꾹꾹 누른 뒤 단단히 조여 맸다. 두 사람의 배낭은 몇 권의 책과 자료노트, 이 날 먹을 두세 끼 분량의 참치밥, 북엇국, 고추장, 김치, 소고기 장조림, 골뱅이 따위 통조림과 김, 라면, 커피믹스, 러시아인들이 어쩔 줄 모르고 좋아하는 초코파이 등 서울에서 가져 온 즉석식품들이 들어 있었다. 식품은 취재반 세 사람이 슈트케이스 하나에 잔뜩 넣어 왔으나 나머지는 닷새 동안 찍은 필름과 옷가지 따위와 함께 호텔에 맡겨 놓은 터였다.
카메라를 다루는 직업 때문인가. 열차가 멈추자 조경호가 제일 먼저 내려, 물 마시고 머리를 드는 수탉처럼 목을 뽑고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현식도 그의 곁에 서서 고개를 젖혔다. 하늘은 쨍하게 맑고 서쪽 지평선 가까운 곳은 뭉게구름이 장하게 떠 있었다. 8월초이지만 러시아 극동지방은 서울과 달리 초가을이었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선선했고 머리를 풀어 내린 여인처럼 가지를 치렁치렁 늘이고 플랫폼에 군데군데 선 미루나무에서는 갈매미들이 야단스럽게 울고 있었다.
“조 형, 날씨가 좋아서 카메라발이 잘 먹히겠어. 북한 땅이 잘 찍히겠지?”
프로듀서 김민규가 선글라스를 치켜올리며 말했다.
김민규와 입사 동기라는 카메라 기자 조경호는 대답 대신 청바지 뒷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미국 프로야구 양키즈 팀 모자를 꺼내 꾹 눌러 쓰면서 “하라쇼.”하고 외쳤다. 훌륭하다, 또는 충분하다는 뜻의 러시아어였다.
니꼴라이가 금발을 휘날리고 서서 팔을 들어 역사(驛舍) 앞의 흙길을 가리켰다. 푸석푸석한 그 길은 역사 앞의 공터에서부터 시작되어 잡초 무성한 구릉을 뱀처럼 타고 넘어가고 있었다.
“저걸 넘어가서리 이십 분쯤 걸으면 철교가 나옵네다. 날레들 따라오시라우요.”
니꼴라이는 취재반이 일당 30달러에 고용한 통역이었다. 평양의 김일성 대학에 유학한 백계 러시아 청년이었는데 평안도 사투리이긴 하지만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가 한국의 독립기념관 연구원들을 두만강까지 안내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일행은 자세히 묻지 않고, 앞장서 긴 다리를 휘청거리며 걷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떠나 이곳에 종착했다가 네 시간 뒤에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가는 열차. 일행은 왕복표를 가진 터라 네 시간 안에 오늘의 취재대상인 두만강을 촬영할 계획이었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지어진 역사는 텅 비어 있었다. 러시아 문자로 ‘하산’이라고 쓴 간판 아래 두툼한 나무로 짠 문이 두 팔을 벌리고 있었는데 대합실에도 인적은 없었다. 역사 뒤로 낮은 지붕을 드러내며 앉아 있는 마을도 한 소년이 고삿에서 굴렁쇠를 굴리는 모습이 잠시 나타났을 뿐 조용했다. 국경역이라 한적한 것일까, 아니면 국경역인데도 한적한 것일까. 현식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자신의 언어가 문득 혼란스러워져서 싱거운 사람처럼 혼자 웃었다.
김민규가 입을 다물고는 못 견디겠다는 듯 휘파람으로 러시아 민요 ‘스텐까라진’을 불어 댔다. 그러더니 몇 걸음 앞서가는 니꼴라이를 향해 50달러 짜리 미국 지폐를 작은 깃발처럼 흔들며 외쳤다.
“꼴려, 국경 경비대 장교한테 두만강 철교에 올라가도 좋다는 허락을 얻어내야 해. 이걸 주고 쓱싹 해 보란 말야.”
“알았습네다.”하고 니꼴라이는 발을 멈추고 돌아서 기다렸다가 돈을 받아 들었는데 이현식은 ‘꼴려’라는 그의 애칭이 주는 어감 때문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레 이름이 니꼴라이 알빠뜨이치라고 합네다. 러시아식 애칭으로 그냥 ‘꼴랴’라고 불러 주시라우요. 결코 ‘꼴려’가 앵입네다. 닷새 전 그가 처음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을 때 일행은 웃음을 터뜨렸다. 러시아 청년이 우리말의 이상한 뉴앙스를 이해해 농담을 하다니. 평양에서 놀림을 많이 당한 모양이군. 현식의 말에 니꼴라이는 눈을 찡긋하며 해학적인 미소를 지었다. 녀학생들도 ‘꼴려’라고 불렀시오. 쌩끗 웃으면서 불렀시오. 내레 참 기가 막혀개지구. 네 사람은 너털웃음을 웃었다.
군용트럭 타이어 자국이 찍힌 맨땅을 걸어 고갯길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김민규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뒤로 꼰 채 서서 현식을 기다렸다. 현식은 아마 다리 앞에서 찍을 화면의 리포팅 멘트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걸음을 조금 빨리 했다. 지금 가고 있는 두만강 철교는 러시아 연해주 포시에트 지역의 문호로서 지난 세기 말 한인들이 남부여대하여 유랑의 길을 떠나온 유민 루트였다.
김민규가 눈을 찡긋하며 현식의 옆구리를 찔렀다.
“정말 괜찮았어요?”
“뭐가요?”
“어제 데리고 잔 여자애 말이에요.”
현식은 조금 쑥스러웠다. 김민규는 올해 마흔 살인 그보다 두 살, 조경호는 세 살이 아래였고 만난 지 열흘밖에 안 된 사이였다. 그리고 그는 어제 저지른 외도에 대해, 작가는 분방한 경험이 재산이라고 생각해 자신을 합리화하려 하고 있었지만 천성적으로 부끄러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활달한 표정을 과장하여 말했다.
“좋았어요.”
“소설 쓰듯이 실감나게 얘기할 줄 알았는데 점잔을 빼시는군요.”
그러더니 김민규는 눈을 감고 두 손으로는 여자의 유방을 움켜잡은 시늉을 하면서 아아, 아아 신음을 냈다.
“고것이 나를 타고 앉아 요염한 허리를 비틀며 요동치는 바람에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했지요.”
카메라 기자 조경호도 한 마디 했다.
“난 온몸의 뼈가 다 녹아 버리는 줄 알았다구요.”
현식은 웃으며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두 사람의 그런 성격이 좋았다. 평소에는 이렇게 헐렁헐렁해 보이지만 일을 시작하면 물불 안 가리고 죽기살기로 덤비는 독종. 그는 진정한 프로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호감이 갔다.
어제 일은 인투리스트 호텔 건너편에 있는 콤소몰 공원에서 시작되었다. 세 사람이 저녁식사 후 산책 삼아 자작나무 숲을 거닐 때 미끈하게 생긴 처녀들이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걸었다.
“당신들은 까레이스키(한인)이군요. 술을 산다면 합석할 수 있어요.”
호텔 로비에서 서성거리는 인터걸들과는 달리 분위기가 조금은 청순해 보였고 말을 트다 보니 대학생들이었다. 결국 호텔의 나이트 클럽을 거쳐 객실로 올라갔고 백 달러씩을 주고 데리고 잤다. 현식의 파트너 뉴샤는 목이 가늘고 깊고 푸른 눈을 가진 처녀로 경제학과 3학년이었는데 학비를 벌기 위해 이런 일을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슬픈 듯한 눈매를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바쳐 그의 쾌락을 위해 봉사했고 그는 50달러를 더 주었다. 까레이스키는 부자군요. 여자를 사며 많은 돈을 쓰다니. 하지만 난 당신을 잊을 거예요. 아침에 뉴사는 그런 말을 남기고 총총히 방을 나갔다.
고갯길을 다 올라갔을 때 조경호가 “두만강 철교가 보인다.”하고 소리치며 배낭을 내려 캠코더를 꺼내 들었다. 김민규도 그 옆에 서서 촬영 방향을 지시했다. 큐씨트(방송 구성안)에 이 고갯길에서 자신이 카메라 앞에 서서 찍을 리포팅은 없었으므로 현식은 담배를 한 대 피우며 굽이굽이 흐르는 두만강과 철교 그리고 그 너머 누워 있는 북한 땅을 바라보았다. 침묵 속에 꿈결처럼 아련히 보이는 산야. 두 차례 만주여행을 하며 북한 땅 가까이 가 보았으니 익숙해질 만도 한데 처음과 마찬가지로 설렘과 안타까움과 슬픔이 어우러져 강물처럼 그의 가슴을 타고 흘렀다. 문득 이용악의 시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가 떠올라 그는 강 앞에서 찍을 리포팅 멘트는 그것을 읊조리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십여 분을 걸어 내려가 철교 앞에 이르렀다. 니꼴라이가 장교를 만나 돈을 주고 온갖 노력을 다한 끝에 다리 앞까지 가는 것은 허락 받았으나 촬영은 거부당했다. 김민규 프로듀서가 그냥 물러설 리가 없었다. 다시 50달러를 주고 방송사 로고가 찍힌 기념 시계를 다섯 개나 꺼내 장교의 주머니에 넣어 주고 5분간의 촬영을 승낙 받았다.
“루스키놈들, 군바리나 여대생이나 달러라면 사족을 못쓰는군. 이 선생, 빨리 리포팅합시다.”
현식은 수첩에 원고를 써서 연습할 여지도 없이 곧장 교두보로 가서 무선마이크를 꽂고 카메라 앞에 섰다. “레디!”하며 치켜든 김민규 프로듀서의 손이 엄지 손가락부터 하나씩 굽혀지기 시작했다. 새끼 손가락이 접혀지며 주먹을 움켜쥐는 순간 그는 스스로 장엄한 표정을 짓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죄인처럼 수그리고 나는 코끼리처럼 말이 없다. 두만강아 너 우리의 강아. 너의 언덕을 달리는 찻간에 조그만 자랑도 자유도 없이 앉았다. 잠들지 말라 우리의 강아. 오늘밤도 너의 가슴을 밟는 뭇 슬픔이 목마르고 얼음길은 거츨고 길은 멀다.’ 저는 지금 이용악의 유민시를 읊으며 우리 유민들의 한이 서린 두만강 앞에 서 있습니다. 지난 세기 말 우리 동포들은 이 곳을 나룻배로 건너 연해주 땅으로 들어섰습니다. 두만강은 지금 역사의 아픔을 안은 채 말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현식에게 익숙한 일이 되어 버렸지만 김민규의 욕심은 집요했다. 그가 엔지를 내지 않았는데도 표정과 제스처 연기를 바꾸게 하며 여섯 번이나 반복시켜 나중에는 경비병의 자동소총에 떠밀려나야 했던 것이다. 미안해요, 고생시켜서. 김민규는 씽긋 웃으며 미네럴 워터병을 내밀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받았다. 괜찮아요. 당신이 독종인 걸 아니까.
현식은 긴장이 풀려 터덜터덜 발을 끌며 세 사람과 함께 다시 하산역을 향해 걸었다. 역사가 보이는 언덕길을 내려가며 손목 시계를 보니 한 시간 남짓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역사 앞까지 이르자 조경호 기자가 소변이 마렵다며 역사 안으로 겅둥겅둥 달려갔다. 현식은 김민규와 니꼴라이와 함께 플랫폼의 미루나무 그늘에 서서 담배를 한 대씩 물고 연기를 뿜어 올리고 있었다.
급한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조경호가 얼굴이 석고상처럼 하얗게 질려서 허공을 짚듯이 허둥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혼자 멋모르고 맹수 우리에 들어갔다가 쫓겨 나온 사람처럼 겁에 질린 얼굴을 보고 현식과 김민규가 동시에 “왜 그래요?”하고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조경호는 숨을 헐떡거리며 손으로 역사를 가리켰다. 현식은 보았다. 유리창마다 까맣게 그을은 사람의 얼굴들이 마치 사과나무의 사과들처럼 다닥다닥 매달려 이 쪽을 보고 있는 것을.
“북조선 벌목공들입네다.”
니꼴라이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조경호는 넋 나간 사람처럼 머리를 끄덕였다.
눈을 둥그렇게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김민규가 현식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가 끄는 대로 돌아서 등뒤쪽 철로를 보던 현식은 입을 떡 벌렸다. 한 시간 전에는 분명히 없었던 열차. 창마다 커튼을 가린 객차에는 북한기와, ‘하산-평양’이라고 쓴 표찰이 한글과 러시아 문자로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북한과 러시아를 왕래하는 전용열차가 분명했다.
김민규가 누가 들으면 큰일이라도 생기는지 작은 음성으로 빠르게 속삭였다.
“벌목공들 가운데 탈출을 기도하거나 사상이 불손하면 다리를 분질러 깁스를 해서 강제 귀국시킨다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실려 있을지도 몰라요.”
니꼴라이를 포함하여 네 사람은 발이 땅에 붙어 버린 것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현식은 다시 역사 쪽을 바라보다가 문득 닷새 전 하바로프스크 공항에 내렸을 때, 김민규와 조경호가 속한 방송사의 특파원이 마중을 나와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러시아에서는 마피아가 호랑이보다 무섭지요. 그놈들은 외국 여행객이 천 달러쯤 지닌 것을 알면 조용히 뒤를 따르지요. 그러다가 기회가 생기면 인정 사정 없이 덮쳐요. 그저 목숨 안 잃는 게 장땡이지요. 그 다음에 무서운 건 북한 벌목공들이에요. 탈출사건이 빈발하고 탈북자들을 담당하던 우리 영사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죽었잖아요. 동시베리아 자작나무 삼림 속에는 탈출한 벌목공들이 야생인간처럼 살고 있어요. 각지를 유랑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그 사람들을 노리거나 남한에서 온 여행객을 노리는 북한인 킬러들도 있다구요. 지난달에는 벌목장에 접근한 ㅈ일보 특파원이 카메라를 빼앗기고 집단폭행을 당했어요. 유리창에 매달린 얼굴들의 눈빛을 자세히는 볼 수 없었지만 현식은 거기서 수십 개의 화살처럼 꽂혀 오는 경계의 빛을 느낄 수 있었다.
조경호가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번질거리는 땀을 닦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대합실로 들어갔는데 바닥에 웅기중기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둘러쌌어요. 마흔 명쯤 될 거예요. 옷차림을 보고 우리 동포들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한 사람이 퉁명스럽게 물었어요. 당신 일본 사람이야, 조선 사람이야? 하고 말이에요. 나는 얼결에 조선 사람이에요, 대답하고는 냅다 달려나왔어요. 소변이고 뭐고 싹 잊어버렸다구요. 그런데 왜 그랬을까요? 내가 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뛰어 나왔을까요?”
조경호는 이제 좀 정신이 나는지 어이없는 표정을 하고 말했다.
김민규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조 형이 기자 정신이 약해서지. 잘하면 특종을 잡을 기회인데.”
조경호의 눈빛이 번쩍 광채를 냈다.
“특종이라구?”
“잡으려구 하다가는 놓치기 쉬운 특종이지. 일단 우리 신분을 숨기고 부닥쳐 보자구. 젠장, 같은 동포들인데 웃는 얼굴을 때리겠어?”
그렇게 말하고 나서 김민규는 현식의 점퍼 소매를 잡아당겼다.
“이 선생도 좋은 소설감을 잡을지 몰라요. 우리 신분은 역사전공 연구원들이라구 하자구요.”
현식도 작가로서 취재 욕심이 참을 수 없을 지경으로 무럭무럭 커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우선 두 사람을 가라앉히기 위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욕심 없이 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터 봅시다. 그리구 난 속이고 싶지 않아요. 작가라고 할 거예요.”
김민규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고 나서 진격하는 선봉장처럼 앞장섰다. 현식은 손이 땀으로 젖은 것을 느끼고 자신이 몹시 긴장하고 있음을 자각해 심호흡을 했다. 내가 긴장하는 것이 두려움 때문인가, 감격을 기대하기 때문인가. 그는 그렇게 자문하면서 걸었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해명하는 주제, 이른바 문학의 본령이랄 수 있는 문제를 잡아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방향을 바꿔 십 년쯤 분단소설을 썼던 그였다. 비평가들로부터 분단 극복에 관한 진보적 시각을 가장 온건하게 표현하는 작가라는 평을 들은 그였다. 이제는 다시 데뷔 당시의 주제로 돌아왔지만 최근 사정이 매우 나빠진 북한 동포들에 대해 깊은 연민을 안고 있었다. 문득 그가 출강하는 모교 캠퍼스에서 본 포스터가 떠올랐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에게 식량을 보내자는 호소를 담은 그 포스터에는 북한의 어린 소년이 야윈 얼굴을 들고 간절하게 팔을 벌리고 있었다. ‘한 입만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그러나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연기처럼 피어나는 감정은 두려움 바로 그것이었다. 소년시절부터 끊임없이 받아 온 반공교육, 그것이 안겨 준 북한 동포들에 대한 적의가 내 잠재의식의 밑바닥에 고여 있단 말인가. 그는 스스로 자문하며 심호흡을 했다.
앞서 걷는 김민규가 대합실에 들어서고 있었으므로 그는 잠깐 동안의 상념에서 벗어났다.
“안녕하십니까, 동무들. 우리는 서울에서 왔습니다.”
김민규가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표정과 음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현식은 그의 곁에 서서 꾸벅 고개를 숙이며
“반갑습니다, 여러분.”
하고 인사를 했는데 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 이 쪽으로 시선을 집중하는 수십 명의 북한인들을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조금 전 밖에서 느낀 긴장과 두려움이 봄눈 녹듯이 녹아 버리고 뭉클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일었다.
북한인들은 아무 말 없이 세 사람을 둘러쌌다. 무심하게 바라보거나 외면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뚫어져라 하고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현식은 그들이 주목하는 것이 세 사람의 안색과 몸에 걸친 고급스러운 옷이라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그도 북한인들을 하나하나 눈여겨 바라보았는데 동남 아시아인처럼 까맣게 탄 얼굴이며 몸에 걸친 남루한 작업복이며 조잡한 신발이며,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표정은 흙바닥처럼 메마르고 초췌한데 눈빛은 강렬했다. 이런 북한인들을 만나다니. 연민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가슴을 가득 메워 그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우리는 여러분과 대화를 원합니다.”
김민규가 간절한 음성으로 말했으나 북한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니, 적의에 찬 눈빛들이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당신들을 거부한다고. 대합실 안은 숨막힐 듯한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세 사람을 따라 들어온 니꼴라이가 떨리는 목소리고 북한인들에게 말했다.
“내레 김일성 대학에서 공부했습네다. 세 분이레 좋은 사람들입네다.”
그러나 아무 반응이 없자 니꼴라이는 얼굴이 굳어진 채로 물러났다.
현식은 북한인들 가운데 열 살 안팎의 소녀와 소년이 있어 그 쪽으로 다가갔다. 배낭 옆주머니에 넣어 온 국산 껌과 초콜릿을 한 줌 꺼내 내밀었다.
“예쁘게 생겼구나. 몇 학년이니?”
소녀는 껌과 초콜릿에 눈길을 보냈으나 스탈린복을 입은 마흔 살 또래 북한인의 눈치를 보며 더듬더듬 말했다.
“…내레 인민학교 사학년이고 …동생이레 이학년이야요.”
그리고는 껌과 초콜릿을 외면한 채 소년의 손을 잡고 어른들 뒤로 숨듯이 걸어갔다. 현식이 돌아보니 김민규와 조경호 역시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말을 걸었으나 아무도 대꾸하지 않아 머쓱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삼십 분쯤 그렇게 지나 현식은 깊은숨을 들이쉬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북한인들의 무응답이 아쉽기만 했다. 성급하게 거푸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지만 서운함과 아쉬움은 씻어지지 않았다.
그 때 김민규가 그에게 눈짓을 하고 대합실 구석으로 걸어갔다. 뒤따라 가 보니 북한인 한 사람이 석유 버너로 밥과 된장국을 끓이고 있었다. 김민규가 다시 간절한 표정을 연출하여 입을 열며 북한인에게 그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켜 보였다.
“동무, 우리 형님 얼굴을 보십시오. 러시아에 와서 조선 음식을 못먹어서 말이 아니에요. 형님은 그놈의 러시아 소시지 갈바싸하고 시이(러시아 수프) 냄새만 맡아도 속이 메슥거리는 분이라구요. 오늘 아침도 굶었어요.”
결코 그렇지는 않았지만 현식은 자신도 모르게 배고픈 표정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북한인은 그의 얼굴을 슬쩍 올려다보더니 묵묵히 또다른 버너에 냄비를 얹어 밥을 안쳤다.
먼저 안친 냄비의 밥과 국이 끓자 그 북한인은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현식에게 숟가락을 내밀었다.
“굶는 동포를 놔 둘 수는 없지비. 우리하고 가티 들고 날래 나가오다.”
“고맙습니다.”
하고 현식은 냄비 앞에 둘러앉은 대여섯 명의 북한인들 사이에 끼여 앉았다.
첫술을 떠서 입에 넣고 북한인들의 눈치를 본 그는 그들이 조금씩 가슴을 열고 있음을 알았다. 마주 보이는 두 사람이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짐짓 오랜만에 밥을 먹어 보니 살맛이 난다는 표정을 하고 국을 떠먹었다. 다시 그들을 바라보니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있었다. 묵묵히 베풀 줄 아는 인정을 가진 사람들. 진정한 동포애는 이것이 아닌가. 게다가 며칠째 즉석식품이나 러시아 음식을 먹어서인지, 그들의 인정 때문인지 된장국의 구수한 맛이 입안에서 돌았다. 하기야 같은 냄비의 음식을 떠 먹는 것보다 가까워지는 길이 있을까. 현식은 가슴이 뭉클해진 채로 숟갈을 놀렸다.
다시 새 냄비의 밥이 익었고 김민규와 조경호가 기웃거렸다. 북한인들은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두 사람도 밥과 국을 먹기 시작했다.
냄비가 바닥을 드러내자 현식은 초콜릿과 껌과 담배를 내놓았다. 김민규와 조경호도 그렇게 했다.
“음식을 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답례하는 겁니다. 모두 서울에서 가져 온 거예요.”
북한인들은 누구도 선뜻 그것들을 향해 손을 내밀지 못했는데 아까 소녀가 눈치를 본 스탈린복 차림의 사내가 나섰다.
“받자구요. 우리레 한 핏줄 한 동포가 아닙네까. 이역 땅에서 만났는데 이바구를 못틀 거이 없수다.”
현식은 그가 이들 단체를 이끄는 지도자라고 생각했다. 다른 북한인들보다 입성이 깨끗하고 피부도 덜 그을은데다가 얼굴에 지적인 자신감이 배어 있기 때문이었다.
스탈린복은 불쑥 현식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레 오정국입네다. 반갑수다.”
현식은 그의 손을 굳게 잡았다.
“나는 이현식입니다. 소설을 써서 밥벌어먹고 사는 작가지요.”
오정국은 인상과는 달리 손이 따뜻했다.
두 사람의 악수를 신호로 김민규와 조경호도 옆사람과 손을 잡았고 현식도 다른 사람들과 부지런히 악수를 했다.
현식은 북한산 담뱃갑을 집어들었다. 거의 동시에 오정국도 남한산 담배를 집어들어, 결국 담뱃갑을 바꾼 셈이 되었다. 현식이 ‘락원 려과담배 20대 평양․대성’이라고 찍힌 글자들을 들여다보며 한 개비를 꺼내는데 오정국이 벌써 꺼내 물고 북한산 곽성냥으로 불을 일으켜 내밀었다.
“오마 샤리프라는 양담배구만요.”
“양담배가 아닙니다. 남조선에서 만든 거지요.”
“기런데 왜 조선말을 버리고 영어로 이름을 붙입네까?”
“수출을 해서 외국 상품과 싸워 이겨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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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70님의 댓글
선배님! 너무 애쓰시네요. 긴 글을 잘 안읽게되는 요즘세대이거든요.한편씩 천천히 하세요.글을 읽고 꼬리말에 감상이 올라오면, 다음 한 편 이렇게요.참고로 "신변잡기"게시판도 구경하세요.
이성현70님의 댓글
우측글이 잘리는 것 사과드리고요--제작자에 얘기했는데 잘 안고쳐지네요. 선,후배가 이 곳(홈)에서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아오니,다른 선,후배님들과 꼬리말로서 대화를 하십시오."하루 한 번 흔적"게시판에서 활발하게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이동열님의 댓글
잠시 선배님의 소설속에 빠져봤습니다,,,,선배님 장롱속에 고이 간직하고 계신 꿀단지들...후배들을 위해서 풀어주심에 감사합니다.
조원오님의 댓글
선배님 올드랭사인을 읽고 가슴으로 울었습니다.마치 옛날 보았던 "20년후"라는 단편소설에서 보았던 범죄자와 형사의,안개자욱한 뉴욕에서의 만남이 생각났습니다.좋은 글들 너무 감사합니다.재학시절에는 이 운원,박 대석형이,졸업후엔 이원규선배와 조우성선배,중국소설의 대가인 또하분의 선배가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선배님 저는 아낄려고 아직 선배님글 암것도 안읽었습니다...
李聖鉉님의 댓글
독서하는 계절에 저명하신 작가선배님 글을 읽게되어 영광입니다.읽으신 후 감상문을 쓰시면 저자분이 좋아하실 겁니다.동문여러분의 출석부 개념을 이 곳에 응용해보시지요.
이기호 67님의 댓글
이성현님의 말이 꽁맞습니다. 저두, 길어서 아직 하나두 안읽었는데, 꼬리표는 다 읽었읍니다. 시간 나는대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것은 인고인 꼬리들 이었읍니다. 감사합니다, 이원규 선배님!
영심이님의 댓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방법~
1. 잠들기 잠자리에서 손바닥을 마주 하여 싹싹 20회 비벼댄다.
2. 다음은 왼 손의 손가락들을 길게 모아 쥐고 오른손으로 감싸 쥐어 비틀면서 마
찰을 10회하여 준다.
다한 후 손을 바꾸어서 다시 10회 한다
3. 다음은 손가락을 폈다가 오므렸다 20회 한다.
4. 마지막으로 숨을 깊이 들이쉬어 복식호흡을 20회하라.
출처는 네이버 지식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