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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65회) 새 책 [김산평전] 서평들
본문
[책꽂이]
[서울신문 2006-11-04 08:33]
●김산 평전(이원규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평북 용천 태생인 비운의 독립투사 김산(본명 장지락) 전기. 김산은 상해로 가 안창호·이광수 밑에서 ‘독립신문’ 식자공으로 일했으며 테러리스트 오성륜과 약산 김원봉, 유자명의 영향으로 아나키스트가 됐다. 공산주의를 조국 독립의 방편으로 삼은 그는 비범한 이론가이자 조직가, 선동가였으며 시인, 소설가, 번역가의 면모도 보여줬다. 중국공산당의 근거지인 연안에서 님 웨일스(본명 헬렌 포스터 스노)를 만나 자신의 투쟁과 조국의 독립운동에 대한 증언을 한 김산은 일제 첩자로 몰려 억울하게 처형당했다.1983년 중국공산당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그를 복권시켰다.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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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새책] 탈 20세기 대화록 外
[중앙일보] 2006-11-03 21:26
◆김산 평전(이원규 지음, 실천문학사, 632쪽, 1만5000원)=사회주의 항일 투사이자 이론가.조직가.선동가이며 시인이자 소설가, 번역가로서도 탁월한 업적을 남긴 김산의 인물 평전. 저자는 김산의 사회주의 항일 투쟁의 성과물과 미공개 자료를 뒤지고 현장 답사를 통해 그의 흔적을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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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연합뉴스 서평
비운의 항일투사 '김산' 평전 출간
[연합뉴스] 2006-11-01 11:22
▲ 김산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민족주의자와 아나키스트를 거쳐 중국 공산당 초기 멤버로, 약산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원으로 중국 대륙에서 치열한 항일투쟁을 벌인 혁명가 김산(金山.본명 장지락. 1905-1938).
공산주의를 조국 독립의 중요한 방편으로 삼았던 그는 비범한 이론가, 조직가, 선동가로서 눈부신 자취를 남겼고 시인, 소설가, 번역가의 면모도 보여주었다. 한순간도 조국 독립의 비원을 잊지 않고 투쟁했지만 중국 공산당의 판단 착오로 결국 억울하게 처형당하고 말았다.
'중국의 붉은별'의 저자인 에드거 스노의 부인 님 웨일스(본명 헬렌 포스터 스노)는 김산의 이야기를 구술해 '아리랑'이라는 회고록을 냈다. 1980년대 들어 이 책이 출간되고 김산이라는 항일 투사의 비화들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소설가인 동국대 문예창작과 이원규 교수는 사회주의 항일투쟁 그룹에 대한 국내외 연구 성과를 섭렵, 김산의 숨결이 어린 역사의 현장들을 여러 차례 답사해 '김산 평전'(실천문학사 펴냄)을 써냈다.
김산이 평북 용천에서 출생해 숭실중학 재학시절 3.1운동으로 퇴학당한 뒤 15세의 나이에 만주벌판 700리를 걸어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가 힘든 수련 끝에 졸업하기까지의 과정, 역사의 격랑 속에서 중국 인민들의 광저우 봉기에 참가했다가 소비에트까지 가게되는 여정, 베이징에서 대학생들의 비밀조직을 지도하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당하고 일본 측에 넘겨져 혹독한 고문을 당하는 모습 등이 생생히 그려진다.
이 과정에서 김구, 안창호, 이회영 등 이미 알려진 항일투사들의 면면과 더불어 의열단원 김익상, 오성륜, 이종암, 김지섭 등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애국지사들의 모습도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중국 공산당에 의해 김산이 처형된 지 45년이 지난 1983년 중국공산당은 과오를 인정하고 그를 복권시켰고, 한국 정부는 그의 탄생 100년이 되는 2005년 훈장을 추서했다.
630쪽. 1만5천원.
yonglae@yna.co.kr (끝) <모바일로 보는 연합뉴스 7070 NATE/ⓝ/ez-i>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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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국민일보 서평
[손에 잡히는 책] 항일현장 통해 일대기 복원… ‘김산 평전’
[국민일보 2006-11-03 15:56]
민족주의자와 아나키스트를 거쳐 중국 공산당 초기 멤버였던 비운의 독립투사 김산(1905∼1938). 그만큼 모국 연구가들의 사랑을 받은 독립운동가도 없을 것이다. 1983년에는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당적이 회복되었으며 지난해에는 한국정부의 훈장도 받았다. 1941년 미국 작가 님 웨일스에 의해 전기소설 ‘아리랑’이 영어로 출간되었고 1980년대 들어 국내에 번역 소개되었지만 그것은 스무번 남짓 인터뷰한 노트를 갖고 집필한 터라 전 생애를 복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소설가 이원규씨는 미공개 자료와 중국의 항일 투쟁 현장에 대한 답사를 토대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김산의 일대기를 복원해냈다. 저자가 “김산의 등 뒤에 선,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수많은 김산들이 어른거린다”고 썼듯 전기는 김산의 생애에 국한되지 않고 항일혁명의 뒤안길에서 스러져간 잊혀진 투사들의 숨결을 되살리고 있다(실천문학·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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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6-11-03 16:42]
▲김산 평전…이원규|실천문학사
“장차 내 책에 쓸 이름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요.”
“김산이 좋겠습니다. 당신이 가봤다는 금강산에서 한 글자를 뺀 것이기도 하고요.”
님 웨일스의 ‘아리랑’으로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 김산은 장지락(張志樂·1905~1938)의 가명이다. 님 웨일스가 한 조선인 혁명가를 인터뷰하는 도중 김산은 태어났다. 김산은 장지락의 무수한 가명 중 하나인 셈이다. ‘아리랑’이 세상에 나온 지 65년 만에 김산은 장지락이라는 본명으로 다시 세상에 찾아왔다. ‘김산 평전’은 장지락의 길지 않은 인생의 파란만장을 역사 다큐멘터리처럼 펼쳐놓았다.
장지락은 15세가 되던 해 홀로 고향 평안북도 용천을 떠나 서간도 신흥무관학교를 찾아 들어간다. 이어 상하이로 가서 ‘독립신문’의 식자공으로 일하며 춘원 이광수, 도산 안창호를 만나기도 하고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 활동에 가담하기도 한다. 또 의학도로 꿈을 키우던 베이징 시절에 만난 김성숙을 통해 공산주의 이론에 눈을 뜨고 조선의 독립을 위한 길찾기에 매진한다. 일제 치하 조선 열혈청년의 성장기는 20세기 초 동아시아 풍운의 역사 그 자체였다. 그가 중국 대륙을 유랑하듯 쫓기거나 떠돌며 부딪치는 사사건건은 역사적 혼돈의 현장들이다. 그래서 장지락의 인생을 관통하는 당시 대륙의 역사도 이 책을 읽는 묘미 가운데 하나다. 낯익은 이름의 중국 근대사 영웅호걸은 물론 생경한 소영웅들을 만나는 재미는 덤이다.
“나는 사회주의 운동과 독립운동이 연합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할 것을 건의한다. 나는 사회주의를 반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여러 이론에 대하여 공감을 느끼기조차 하며, 또한 민족 독립운동은 나의 일상생활로 되어있다.”(국민당 공안국에 체포된 후 작성한 자술서)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그리고 공산주의자로. 하지만 그것들은 장지락에게 조선 독립운동을 위한 한 방편일 뿐이었다. 장지락과 고난을 나눈 이름도 생소한 조선의 젊은 열사들은 우리가 잊고 있던 그 무엇을 생각하게 한다. 저자 이원규씨(동국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가 사회주의자라는 멍에가 씌워져 망각되고 있는 조선인 열혈 혁명가들에게 애정을 보내고 있음을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밤하늘을 밝히는 것은 북극성만이 아니라 조그만 뭇별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을 다시 깨우쳐 주듯이. 1만5천원 〈서영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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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관련 한겨레신문 인터뷰
“아리랑의 지평 5배까지 넓혔습니다”
“기록이라도 남은 김산은 행운아” 한국 출간 22년만에 본격 평전
항일운동 현장 제일 많이 아는 사람 “후학들이여 나를 밟고 가라”
한승동 기자 박종식 기자
인터뷰/<김산 평전> 쓴 이원규씨
님 웨일즈와 김산 공동저작으로 돼 있는 <아리랑> 2005년 개정 3판에는 1991년에 쓴 리영희 선생 추천사가 그대로 실려 있다. “이 나라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던 지난 30년의 지적·사상적 암흑 속에서 가끔 <아리랑>을 펼치는 것은 나에게는 큰 위안이었다. 모색하다 지치고 좌절 때문에 실의했을 때는 ‘김산’을 찾았다. 그는 내가 감히 미칠 수 없는 높은 곳에서 나에게 빛이 되어 주고 힘이 되어 주곤 했다.” 추천사는 이렇게 끝난다. “그 두 사람(김산과 웨일즈)의 만남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그것은 이 민족(또는 동양)의 혁명운동사에 큰 사건으로 남아야 할 우연인 셈이다.”
1938년 중국공산당 극좌노선을 대표하는 캉성(강생)의 과오로 33살 한창 나이에 희생당한 조선인 항일혁명운동 지도자 장지락(1930년에 붙잡혀 톈진의 일본영사관에서 찍은 사진에는 ‘장지학’으로 돼 있다). <아리랑>을 통해 김산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조선 독립운동사에 명멸한 수많은 인물들 중 아마 지금의 한국인들로부터 가장 주목받고 사랑받는 인물 가운데 한사람일 것이다.
스테디셀러 <아리랑>은 1941년 미국에서 발행된 뒤 43년만인 84년에야 한국에서 처음 번역출간됐다. 그리고 다시 22년이 지난 이제 김산에 관한 본격적인 평전이 처음 나왔다. 실천문학사가 ‘역사인물찾기 시리즈’ 20번째로 내놓은 <김산 평전>. 저자 이원규(59)씨는 “<아리랑> 등 김산에 관한 기존 책들이 쌓아올리고 펼쳐놓은 지평을 적어도 3배 이상 넓혀 놓을 자신, 말하자면 명백한 차별성을 드러낼 자신이 없으면 쓰지 않는다”는 각오로 도전했고, “최대 5배까지 넓혔다”고 장담했다.
웨일즈만 하더라도 당시 조선과 조선인 독립운동에 관한 배경지식이 없었고 20여 차례에 걸친 김산과의 인터뷰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에, 비록 그의 기록이 중국혁명운동 역사기록과 맞춰보더라도 놀랄만큼 정확하다는 건 확인됐으나, 당시 상황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내용들을 두루 풍부하게 담긴 어려웠을 것이다. 평전은 웨일즈로선 손댈 수 없었던 김산의 최후까지를, “아직 아쉬운 수준이지만” 나름대로 복원했고, 그가 사랑한 여성들과 아들들 얘기, 캉성의 최후 등 현지답사와 새 자료발굴로 얻은 성과들을 충실히 담아냈다.
<월간문학> 등의 등단작가인 저자는 지난해엔 <약산 김원봉>을 출간했다. 이들 ‘좌익계열’ 독립운동가들을 되살려 놓는 작업에 그가 특별히 힘을 쏟는 데는 사연이 있다. “냉전과 분단구도에 길들여져 있던 60년대 말 학번인 우리 세대에게 <아리랑> 출간은 충격이었다. 김학철의 <격정시대>와 <아리랑> 등은 우리 항일운동사의 절반이 저쪽에 있다는 생각을 되새기게 했다.” 중국과 수교하기 전인 90년대 초부터 아마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연안과 태항산 등 중국내의 조선인 항일무장세력 활동지들을 부지런히 찾았다. 때로 억류까지 당하면서 스무번 가까이 중국을 찾았고 시베리아도 훑었다. 그걸 토대로 <누가 이 땅에 사람이 없다 하랴>, <독립전쟁이 사라진다> 등을 썼고 ‘항일운동사 전문가’, ‘현장을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이 됐다.
“<아리랑> 등은 (우리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는) 정신적 열패감을 씻어주었습니다. 저 너머에 우리가 몰랐던 많은 사실들이 었었던거죠.” 그렇게 다니면서 3·1만세운동의 풍운아 한위건, 오성륜, 양세봉, 김원봉, 그리고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작은 영웅’들을 새로 만났다. 그가 보기에 비록 비운의 희생자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리랑>으로 남은 “김산은 행운아”다. 김산이 사랑받게 된 것은, 그가 보기엔 제대로 된 독립운동가들 전기나 평전이 따로 거의 없는 데다 웨일즈라는 외국 여성작가가 개입된 극적인 요소, 그리고 김산 개인의 역사적 체험과 인물됨 등이 요소들이 작용한 결과다.
“북한조차 항일무장운동사는 제대로 정리가 돼 있지 않는 것 같다. 남과 북은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빼내 이용해먹었다. 항일독립운동사마저 분단돼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후학들이여, 나를 밟고 나아가라.”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기사등록 : 2006-11-02 오후 08: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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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신문 프레시안 2006.11.05.일요일
장지락으로 부활한 <아리랑>의 김산
[프레시안 2006-11-05 17:35:09]
[화제의 책]이원규의 <김산 평전>
[프레시안 전홍기혜/기자]
우리에게 님 웨일스의 <아리랑>으로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 김산(金山). 그의 본명은 장지락(張志樂·1905~1938)이다.
장지락은 장북성(張北星), 장북신(張北辰), 장명(張明), 유청화(劉淸華), 유금명(劉錦明), 유금한(劉錦漢), 유한산(劉寒山), 유한평(劉漢平), 한국유(韓國劉), 유자재(柳子才), 이철암(李鐵庵), 우치화(于致和), 손명구(孫明九) 등 10개가 넘는 가명을 썼다. 김산은 1937년 님 웨일스(본명 : 헬렌 포스터 스노)와 인터뷰 과정에서 만든 그의 마지막 가명이다.
<아리랑>(Song of Ariran : The Life Story of a Korean Rebel)이 나온 지 65년이 지나고, 그가 태어난 지 한 세기를 넘기고 나서야 그의 평전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아리랑>의 빈 곳을 채우는 <김산 평전>
<김산 평전>(이원규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은 님 웨일즈가 김산을 20여 차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아리랑>의 빈 곳을 채운다는 의미에서 나온 책이다.
님 웨일스는 장지락(김산)의 영어 실력에 대해 "독해는 보통이 넘는 수준이었으나 영어로 이야기하는 데는 그리 능숙지 못했다"고 평가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 바 있다.
또 님 웨일즈는 <아리랑> 원고가 국민당 공안국이나 일본 측에 넘어갈 경우 장지락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해 몇몇 사실을 일부러 틀리게 기록해 놓기도 했다. 그는 <아리랑> 초고에 장지락의 모국을 몽골이라고 썼었다. 또 그 이후 출판된 책에서도 그의 고향을 평안 교외 차산리라고 쓰고 있으나, 실제 장지락의 고향은 평안북도 용천군 북중면 하장동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원규 교수(동국대 문예창작학과)는 평전을 쓰면서 직접 장지락이 활동했던 중국 현지를 방문했다. 또 <아리랑>이 나온 이후에 밝혀진 관련 자료와 연구 성과도 최대한 반영하려 애썼다.
그래서 장지락이 15세 되던 해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가출해 서간도의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고, 학교를 마친 뒤 상하이로 가서 <독립신문>의 식자공으로 일하면서 춘원 이광수, 도산 안창호 선생 등에게 가르침을 얻고, 약산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 활동에 가담하고, 베이징에서 의학공부를 하던 중 만난 김성숙을 통해 공산주의 이론에 눈을 뜨는 등 그가 독립운동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또 이 책은 <아리랑>이 담을 수 없었던 장지락의 억울한 '죽음'도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다. 그는 중국 공산당 활동을 하고 김성숙 등과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중국 공산당 극좌노선을 대표하는 캉성(康生)에 의해 일제와 결탁했다는 누명을 쓰고 1938년 10월 19일 총살당했다.
에필로그에는 그의 아내 조아평과 아들 고영광(1945년 조아평이 재혼한 뒤 계부의 성을 갖게 됐다)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철이 들고 나서야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된 아들 영광은 그 이후 중국 정부의 관료가 되면서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그는 <아리랑>을 쓴 님 웨일즈에게도 아버지 장지락에 대해 묻는 편지를 써 답장을 받기도 했다. 그의 노력으로 1983년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는 장지락의 처형이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고 그의 '명예 회복'을 결정했다.
올해 70세인 아들 영광은 지난 2005년 한국을 방문해 장지락 출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 정부가 수여한 건국훈장 애국장을 아버지 대신 받기도 했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김산들을 위해 썼다"
이원규 교수는 또 "분단 모순은 우리의 허리를 갈라놓은 외에 사회주의 항일투사들의 투쟁을 외면함으로써 독립운동사마저 분단시켜놓았다"며 "김산의 등 뒤에 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수많은 김산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김산은 채 자신의 뜻을 펴기도 전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어갔지만, 그래도 <아리랑>으로 남아 많은 이들의 애정과 존경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행운아'라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그래서 이 교수는 한위건, 오성륜, 김원봉, 유자명, 박진 등 당시 장지락과 함께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사상과 투쟁도 최대한 복원시키려 애썼다.
장지락과 함께 했으나 잊혀져간 '소영웅'들을 다시 불러온 것, 또 우리 민족의 역사가 이들에게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 일깨워주는 것도 이 책이 남긴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전홍기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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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일보 2006년 11월 04일 00시 00분 입력
역사의 뒤안길서 불사른 투쟁의 불씨
비운의 삶 살다간 항일 투사 '김산' 평전 출간
소설 '아리랑' 토대…억울한 죽음 입체적 복원
김산평전
이원규 지음ㅣ실천문학사ㅣ1만5천원
민족주의자와 아나키스트를 거쳐 중국 공산당 초기 멤버로, 약산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원으로 중국 대륙에서 치열한 항일투쟁을 벌인 혁명가 김산(金山·본명 장지락,1905∼1938).
공산주의를 조국 독립의 중요한 방편으로 삼았던 그는 비범한 이론가, 조직가, 선동가로서 눈부신 자취를 남겼다. 또 시인, 소설가, 번역가의 면모도 보여줬다. 그러나 한순간도 조국 독립의 비원을 잊지 않고 투쟁했음에도 중국 공산당의 판단 착오로 결국 억울하게 처형당하고 말았다.
더구나 해방후에는 공산주의의 기치 아래 싸웠다는 이유로 그의 생애와 주변 이야기는 긴 세월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혀지는 비운을 겪는다.
김산이라는 항일투사가 세상에 알려진 건 1980년대 님 웨일스(본명 헬렌 포스터 스노)의 소설 '아리랑'이 출간되면서부터.
이 책에 따르면 김산은 장지락의 무수한 가명 중 하나다. 장지락과 님 웨일스의 대화 도중 님 웨일스가 '장차 책에 쓸 (장지락의)이름을 뭘로 했으면 좋겠냐'고 묻자, 장지락이 '김산'으로 말 한 것.
이렇듯 '아리랑'은 김산을 세상 밖으로 끌어냈지만 스무 번 남짓 인터뷰한 노트를 갖고 집필한 것이라 시야가 좁아 김산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저자는 문민정부 이후 펼쳐진 사회주의 항일투쟁 그룹에 대한 국내외 연구 성과를 섭렵, 김산의 숨결이 어린 역사의 현장들을 여러 차례 답사해 이 책을 펴냈다.
김산이 평북 용천에서 출생해 숭실중학 재학시절 3.1운동으로 퇴학당한 뒤 15세의 나이에 만주벌판 700리를 걸어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가 힘든 수련 끝에 졸업하기까지의 과정, 역사의 격랑 속에서 중국 인민들의 광저우 봉기에 참가했다가 소비에트까지 가게되는 여정, 베이징에서 대학생들의 비밀조직을 지도하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당하고 일본 측에 넘겨져 혹독한 고문을 당하는 모습 등이 생생히 그려진다.
이 과정에서 김구, 안창호, 이회영 등 이미 알려진 항일투사들의 면면과 더불어 의열단원 김익상, 오성륜, 이종암, 김지섭 등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애국지사들의 모습도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저자가 서문에 “김산의 등 뒤에 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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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오님의 댓글
선배님 좋은 글 너무 고맙습니다.옛날 이 운원이형,박 대석이형처럼 존경합니다.
이원규(65회)님의 댓글
고마워요. 그런데 아아, 그리운 친구들 이운원과 박대석. 그들과 같이 대학을 다녔지요. 같은 국문과 이운원은 군대 다녀온 뒤 복학생 때 소설을 떠났고 박대석은 경영학과에 다녔어요. 이운원은 착실한 교육자가 되어 서울에서 교장 하고 있고 박대석은 KBS 떠나 대학 강의를 하고 있지요.
조원오님의 댓글
소식 주셔서 고맙습니다.한분은 웅변반에서,한분은 수인선 통학생으로 만났습니다.막걸리도가를 하시던 이 운원선배집에 여러번 간 기억이 납니다.원규선배님은 경기은행때 뵌것 같습니다.나날이 번창하시길.............
이원규(65회)님의 댓글
아, 그랬군요. 나도 조형을 알 듯합니다. 그리고 이 나이에 더 번창할 수 있나요. 작가들은 늙어서 감성 중심 순수소설에 힘 부치면 수필, 역사소설에 눈 돌리는데 나는 전기 작가로 가고 있지요. 기회 닿으면 술 한 잔 합시다.
이기호 67님의 댓글
저두 좀 껴 주세요. 이원규 선배님! 늙은악사, 감명깊게 읽었읍니다. 저두 Classical Music 즐겨 듣습니다. 제 큰딸은 성악이 전공이구요(Coloratura Soprano), 둘째딸은 의과대학 대학원 준비중인데, Kreisler의 사랑의 기쁨, 슬픔, Mendelssohn Violin Concerto 정도는 즐겨연주 합니다. 속초에 오실일 있으시면, 연락 주
이기호 67님의 댓글
십시요! 원오두 반갑다. 겨울로 성큼 다가선 듯한 어제와 오늘 이구나. 설악산엔 눈이 제법 많이 쌓였다, 어젯밤에 내린 눈!
李聖鉉님의 댓글
이원규 선배님 슬슬 대화가 터지시는군요. 7자 들어간 사람 질투나용 ㅎㅎㅎㅎㅎ
이원규(65회)님의 댓글
이기호 동문님, 속초 사시는군요. 반갑습니다. 변변찮은 글 읽어주셔서 고맙구요. 문단에 발표한 단편들 중 컴퓨터 파일로 보존된 것들을 여기 올리는데 동문님들 그냥 심심풀이도 되고 이 자리가 다양해질 것 같아섭니다. 만날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기호 67님의 댓글
이원규 선배님, 감사합니다. 계속, 좋은글 자주 올려 주세요. 시간내서 읽겠읍니다. 오늘 즐거운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