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원규(65회)신간 [김산 평전] 한양대 김용범 교수 서평
본문
書評-이원규 『김산 평전』(실천문학사 2006년)
따뜻한 가슴을 가진 혁명가
김용범(소설가, 한양대 문화콘텐츠과 교수)
작가 이원규의 『김산 평전』은 『약산 김원봉』에 이어지는 두 번째 작업이다. 정치한 자료조사와 현지 답사. 그리고 가능한 개인의 감정을 절제하는 차갑고 냉정한 문체. 이원규표 평전은 이미 우리들에게 새로운 유형의 글틀로 자리잡고 있다. 이번 작업 역시 이전의 약산 김원봉 평전에 이은 노작. 좀 특별한 판형의 두툼한 양장본의 무게는 이번 작업 역시 녹록치 않은 내공이 스며 있음을 직감케 했다.
그는 책머리에서 자신과 김산의 만남을 숙명이라고 술회했다. 그가 숙명처럼 만난 김산. 아마도 그것은 몇 몇 문헌 자료에서 촉발된 것이라기보다는 필드에서 찾아낸 결과일 것이다. 어느 해인가 석가장을 거쳐 연안으로 탐사를 떠나던 그 현장에서 김산을 보았으리라. 그렇게 10여년 숙성의 오랜 시간을 지나고 나서 문득 완성된 평전 한 권. 우리들은 이원규의 평전 이전에도 여러 가지의 자료들을 통해 드러난 파란만장했던 젊은 혁명가 김산의 삶에 대하여 일종의 외경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헬렌 포스터 스노의 『아리랑』이다. 90년대 초 금기시되어 왔던 공산주의 계열 혁명가들의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 중 하나로 아리랑이 출판되며 김산의 존재가 알려진다.
조심스럽게 우리들 앞에 나타난 김산. 다른 혁명가들의 삶과 달리 김산 생존 당시 홍군의 근거지인 연안에 스며든 미국인 르뽀 라이터의 기록으로 우리들에게 전해지며 진실과 함께 아련한 일루젼으로 전개되었다. 그런 일루젼은 뒤이어 한 중 교류의 물꼬가 트이며 그의 행적이 흩어져 있는 중국과 교류가 터지며 관심 있는 식자들은 다투어 그의 행적을 찾아 나서게 했다. 그 결과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젊은 혁명가 김산의 구체적인 혁명적 삶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학술논문으로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발표된다. 그리고 한동안의 침묵. 이제 공산당원이었던 그의 투쟁과 혁명의지가 순수한 의미의 조명을 받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될 무렵 작가 이원규는 특유의 르뽀 정신으로 정면으로 김산의 평전을 집필한 것이다.
작가 이원규의 『김산 평전』은 평전 기술의 가장 기본인 연대기적 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는 전기형식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뼈대인데, 그 뼈대에 작가의 재구력(再構力)으로 되살려진 시대배경과 역사적 사건의 전말. 중국과 식민지 조선의 현실 등의 터전이 마련되면서 평전의 주인공 장지락 세칭 김산이 행동을 시작한다.
다른 작가들과 달리 이원규의 평전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작품으로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 바로 김산의 동선에 행위 배경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치밀한 분석에 있다.
15살에 작은 형의 돈을 훔쳐 집에서 나온 김산. 그 배경이 된 중학교 시절, 그가 겪은 3.1운동이 재구되어 있고 그 역사적 사건을 현장에서 목도한 어린 김산의 결심이 드러난다. 그는 결국 혁명의 길을 찾아 모스크바로 향한다. 김산의 행동 앞뒤에 장치된 당시의 상황은 독자들에게 김산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자연스럽게 유추시킨다. 그러나 장지락 김산의 원대한 꿈은 좌절되고 하얼빈에서 모스크바행이 좌절된 어린 김산이 발길을 되돌려 찾아간 곳은 삼원보. 신흥무관학교. 이런 행로 결정의 배경에 그는 이미 용암포 시절의 기술에서 풍문으로 떠도는 신흥무관학교의 존재를 기술하여 유하현 삼원보로 향하는 어린 혁명가 김산의 행로를 예측할 빌미를 만든다. 그뿐 아니라, 삼한 갑족 이시영의 신흥무관학교 설립 배경과 이청천 이범석과 같은 교관들, 그 곳에서의 공부와 학생생활, 군사 훈련과정. 신흥무관학교의 지리적 배경들을 세밀하게 재구성하여 주인공을 투입시킨다. 게다가 당시의 마적들과 간도 주민들의 삶, 그를 위기에서 구출하여 주는 안동식 장로와의 인연. 그 집 딸인 미삼과의 풋풋한 삽화들을 장치하고 있다.
평전을 읽으며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게 만든 것. 이는 학술적 목적의 글들과 이원규식 평전 기술방법이 확연히 다른 기법이다. 이미 글을 읽는 독자들은 그가 마련한 당대의 상황에 몰입하게 만들고 김산의 삶을 대입시키는 상황 설정과 스토리텔링 방식은 평생 동지 김성숙과 오성륜을 만나며 혁명가의 길로 투신하는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상해에서의 삶과 의열단의 아나키스트들과의 만남. 중국혁명의 현장에 뛰어드는 광주 봉기에서도 당시 국민당 장개석과 중국 혁명을 꿈꾸는 공산주의자들과의 갈등이 철저한 학문적 자료들을 섭렵 정리한 상황에서 장지락 김산을 투입시키고, 봉기에 실패하여 사지를 탈출하는 숨가쁜 과정에서 무명의 여전사와의 로맨스를 삽입시켜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혁명담에 쉼표처럼 휴지를 주고 스토리에 싱싱한 탄력을 부여한다.
다시 이어지는 북경 천진 심양을 오고가는 지하공산당원으로서의 활동과 학문활동. 새로운 동지들과의 조우. 연안에서의 활동의 배경에 사이사이 스며드는 조아평 제영숙과 같은 여인들의 이야기는 마치 육질이 좋은 등심에 배어있는 마블링같이 거친 혁명가의 삶의 갈피에 스며들어 스토리에 윤기를 준다 .이것이 이원규표 평전의 매력이다.
모두에 본인은 가능하면 허구를 개입시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의 상상력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문헌자료와 증언의 틈이 벌어져 있다면 그는 어김없이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면밀하게 고려하여 행위 하나 하나의 당위성을 확보한다. 그리고 앞뒤의 사건을 연결시키면서 독자를 이끌어간다 그래서인지 전편 어디에도 쌩뚱맞게 튀어나오는 사건이 없이 젊은 혁명가의 연대기가 탄탄한 스토리텔링에 의해 물 흐르듯 기술되는 것이다.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 최근 나는 왕사오밍(王曉明)이 쓴 『노신전 (魯迅傳)』을 탐독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간 루신』이란 이름으로 발간된 책이었다. 그 책 속의 노신은 우리가 일찍이 알고 있었던 혁명가며 투철한 계몽주의자며 작가였던 ‘노신’이 아니라 가장 평범한 인간이란 새로운 면을 보았다. 지독히 인간적인 노신. 가끔은 비겁하기도하고 우유부단하기도한 그의 배면, 그의 면모가 가감없이 들어왔다. 중국의 공산당 지도부가 만들어낸 위대한 노신의 이미지 뒷편에 있는 가장 인간적인 노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이원규의 『김산 평전』을 읽으며 왕사오밍의 『노신전』, 인간 루신이 겹쳐지는 것은 우연일까. 작가 이원규가 그린 ‘김산’은 과연 철혈혁명가였을까 아니면 따뜻한 가슴을 지닌 인간 ‘장지락’이었을까 . 독자들은 이 책을 덮으며 나와 비슷한 생각에 한 번 더 깊이 잠길 것이다. (계간 [문학과 창작] 2007년 봄호 수록)
이원규와 푸른 날개 Since 2003에 가면 이원규의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novelistleelove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