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내 마음에 새긴 가족
작성자 : 김연욱
작성일 : 2007.08.14 18:23
조회수 : 1,087
본문
그날도 난 여전히 창 밖으로
엄마 모습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한 언니가 내게 다가와
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이제부터 니가 알아서 다 챙겨먹어야 돼"
그러고는 매몰차게 돌아서서
뛰어가던 경아 언니!!
그 때부터 난 엄마를 기다리지 않았던 것 같다.
중학교 교복이 유난히
잘 어울렸던 경아 언니를
기다리는게 훨씬 쉬웠으니까---.
내성적인 성격 탓에
보육원 안에서도 늘 겉돌았던 난
보육원에서 경아 언니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그렇게 조금씩 보육원 생활에 적응해 갈 무렵
언니는 보육원을 떠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취업했다.
다시 선로를 이탈한 기차 신세가 되버린 나는
매일 같이 창 밖만 응시했고
언니는 고맙게도 한 달에 두 번씩은 날 보러 왔다.
어느새 시간은 나를 고3으로 만들었고
내겐 사치라고 느꼈던 대학 생활을
조금씩 조심스럽게 꿈꾸게 되었다.
허나, "개 발에 주석 편자"였기에 포기하고 있을 무렵
경아 언니에게서 편지 한 통이 날아 왔다.
등록금을 마련해 놓았으니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라는 내용이었다.
또한 같이 살 조그만 방도 얻을 수 있으니 염려말라고--
공부 잘 해줘서 오히려 고맙다는
언니의 편지를 받고 한참을 울었다.
여설 살이란 나이에
나를 낳아 준 엄마도 나를 버렸는데
피 한방울 안 섞인 내게 왜 이토록
잘 해주는 것인지, 미안하고 고마웠다.
반드시 성공해서 갚으리라 다짐하며
나는 대학에 입학했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언니와도 함께 살 수 있었다.
우리는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는 임신 사실을 말했고
곧이어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한 남자를 형부로 소개했다.
형부 역시 우리 형편보다 별반 나을게 없어
결혼식도 못 올린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방 두칸짜리 임대 아파트를 얻었다.
난 언니에게 더 이상 짐이 되기 싫어서
혼자 살겠노라 했지만
기어이 언니 손에 이끌려 방 한칸을 차지하고 말았다.
몇 달 뒤 언니는 너무나도 예쁜 딸 수빈이를 낳았다.
이런게 가족이구나 하는 또 다른 행복감에 젖어
수빈이 돌을 맞았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털어
수빈이 돌 잔치를 해 주고
남은 돈으로 언니와 형부를 위해
제주도 항공권을 예약했다.
언니 시집 갈 때 신혼 여행은
내 손으로 꼭 보내주려고
예전부터 다짐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빈이 걱정에 발을 못 떼던 언니와 형부를
걱정 말고 재미있게 놀다 오라며 떼 밀었던 것이
언니와 형부를 영원히 벼랑 끝으로 내몰고 말았다.
그 때 제주도에서 교통사고로
언니는 형부를 먼저 하늘 나라로 보내고
두 다리의 감각마져 잃고 말았다.
하루에도 수 천번씩 죄책감에 죽고 싶었지만
언니와 수빈이를 위해 뻔뻔스럽게 살아야 했다.
살면서 언니와 수빈이에게 용서받아야 했다.
나한테 어울리지 않았던 대학교를
2년 만에 자퇴한 뒤 난 곧바로 취업했다.
낮에는 수빈이와 언니를 돌봐야 했기에
야간 일을 골라서 해야 했다.
하루 하루가 지옥 같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수빈이를 보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나에 대한 원망인지 사고 후 단 한 번도
웃어주지 않던 언니도
고맙게 그 옛날 당당하고
다정했던 모습으로 돌아왔다
형부의 기일을 벌써 다섯번째 맞은 올 해
우리 수빈이는 어느 새 유치원생이 됐다.
"언니! 언니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버린 나를
용서해줘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형부!!
얼마 전 우리 수빈이가 이런 말을 했어요
자기는 아빠가 없는 대신
엄마가 둘이라고, 그래서 괜찮다고요."
그 말 듣고 많이 울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고마웠어요!!
내게도 이젠 정말 가족이 생긴 거니까요!!"
==좋은 생각 중에서==
엄마 모습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한 언니가 내게 다가와
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이제부터 니가 알아서 다 챙겨먹어야 돼"
그러고는 매몰차게 돌아서서
뛰어가던 경아 언니!!
그 때부터 난 엄마를 기다리지 않았던 것 같다.
중학교 교복이 유난히
잘 어울렸던 경아 언니를
기다리는게 훨씬 쉬웠으니까---.
내성적인 성격 탓에
보육원 안에서도 늘 겉돌았던 난
보육원에서 경아 언니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그렇게 조금씩 보육원 생활에 적응해 갈 무렵
언니는 보육원을 떠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취업했다.
다시 선로를 이탈한 기차 신세가 되버린 나는
매일 같이 창 밖만 응시했고
언니는 고맙게도 한 달에 두 번씩은 날 보러 왔다.
어느새 시간은 나를 고3으로 만들었고
내겐 사치라고 느꼈던 대학 생활을
조금씩 조심스럽게 꿈꾸게 되었다.
허나, "개 발에 주석 편자"였기에 포기하고 있을 무렵
경아 언니에게서 편지 한 통이 날아 왔다.
등록금을 마련해 놓았으니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라는 내용이었다.
또한 같이 살 조그만 방도 얻을 수 있으니 염려말라고--
공부 잘 해줘서 오히려 고맙다는
언니의 편지를 받고 한참을 울었다.
여설 살이란 나이에
나를 낳아 준 엄마도 나를 버렸는데
피 한방울 안 섞인 내게 왜 이토록
잘 해주는 것인지, 미안하고 고마웠다.
반드시 성공해서 갚으리라 다짐하며
나는 대학에 입학했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언니와도 함께 살 수 있었다.
우리는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는 임신 사실을 말했고
곧이어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한 남자를 형부로 소개했다.
형부 역시 우리 형편보다 별반 나을게 없어
결혼식도 못 올린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방 두칸짜리 임대 아파트를 얻었다.
난 언니에게 더 이상 짐이 되기 싫어서
혼자 살겠노라 했지만
기어이 언니 손에 이끌려 방 한칸을 차지하고 말았다.
몇 달 뒤 언니는 너무나도 예쁜 딸 수빈이를 낳았다.
이런게 가족이구나 하는 또 다른 행복감에 젖어
수빈이 돌을 맞았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털어
수빈이 돌 잔치를 해 주고
남은 돈으로 언니와 형부를 위해
제주도 항공권을 예약했다.
언니 시집 갈 때 신혼 여행은
내 손으로 꼭 보내주려고
예전부터 다짐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빈이 걱정에 발을 못 떼던 언니와 형부를
걱정 말고 재미있게 놀다 오라며 떼 밀었던 것이
언니와 형부를 영원히 벼랑 끝으로 내몰고 말았다.
그 때 제주도에서 교통사고로
언니는 형부를 먼저 하늘 나라로 보내고
두 다리의 감각마져 잃고 말았다.
하루에도 수 천번씩 죄책감에 죽고 싶었지만
언니와 수빈이를 위해 뻔뻔스럽게 살아야 했다.
살면서 언니와 수빈이에게 용서받아야 했다.
나한테 어울리지 않았던 대학교를
2년 만에 자퇴한 뒤 난 곧바로 취업했다.
낮에는 수빈이와 언니를 돌봐야 했기에
야간 일을 골라서 해야 했다.
하루 하루가 지옥 같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수빈이를 보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나에 대한 원망인지 사고 후 단 한 번도
웃어주지 않던 언니도
고맙게 그 옛날 당당하고
다정했던 모습으로 돌아왔다
형부의 기일을 벌써 다섯번째 맞은 올 해
우리 수빈이는 어느 새 유치원생이 됐다.
"언니! 언니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버린 나를
용서해줘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형부!!
얼마 전 우리 수빈이가 이런 말을 했어요
자기는 아빠가 없는 대신
엄마가 둘이라고, 그래서 괜찮다고요."
그 말 듣고 많이 울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고마웠어요!!
내게도 이젠 정말 가족이 생긴 거니까요!!"
==좋은 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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