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류청영(57회)/자유공원을 맥아더공원, 인천대교를 맥아더대교로(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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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공원을 맥아더공원, 인천대교를 맥아더대교로
류청영 맥아더장군 동상 보존 시민연대 대표(인천지구황해도민회 회장)
응봉산에 자리 잡고 있는 지금의 ‘자유공원’은 처음에는 미국, 영국, 독일 등 각국 사람들이 설정한 각국 조계지역 안에 있었기 때문에 ‘각국공원’으로 불리다가 점차 여러 나라라는 뜻의 ‘만국공원’으로 불리었다.
이후 1914년 일본이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 자리에 신사를 세우고 그곳을 동공원이라 부르면서, 만국공원을 서공원이라 불렀다. 광복 후 다시 서공원은 만국공원으로 불리었다.
전쟁승리로 자유공원으로 개명
1957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 동상 제막식을 하면서, 이 땅의 공산화를 막아주어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는 뜻에서 ‘자유공원’이라 불리게 됐고, 지금까지 자유공원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 전사에서 인천상륙작전과 비교되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침략을 받아 프랑스가 함락 당하자 1944년 6월 6일 아이젠하워 장군이 9천386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성공시킨 상륙작전으로, 이로 인해 프랑스의 주권이 회복됐다.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사람들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전사한 장병을 추모하기 위해 오마하 비치의 21만 평 땅에 묘비를 세우고 이곳을 성지화해 미국에 기증, 프랑스 땅 안에 미국 땅이 있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은 인민군의 남침을 막아낸 상륙작전으로, 조수 간만의 차가 9m나 돼 작전 성공률이 5천분의 1밖에 되지 않아 미국 군 수뇌부에서 반대했지만, 명장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킴으로써 일거에 북괴군의 보급로를 차단해 한강 이남을 싸우지도 않고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미국 군 수뇌부의 주장대로 군산으로 상륙했다면 한강 이남은 폭격으로 황폐화되고, 한국 국민도 200만 명 이상이 추가로 죽거나 다쳤을 것이다.
전사에 길이 남을 업적 기려야
자유공원을 ‘맥아더공원’으로 개명하자는 취지는 위와 같이 전사(戰史)에 길이 남을 훌륭한 인천상륙작전 60주년을 맞아 프랑스 사람들처럼 자유공원을 미국에 기증하지는 못할 망정, 작전을 총 지휘한 장군의 이름대로 맥아더공원으로 하자는 것이다.
자유를 갈망하던 시대에 만국공원에서 자유공원으로 바꾼 지 50년이 지났고,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자유가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우리의 자유를 있게 한 장군을 기념하면서 자유공원을 맥아더공원으로 바꾸고, 인천상륙작전 시 상륙지점이고 격전지였던 곳에 건설된 인천대교를 ‘맥아더대교’로 바꾸어 맥아더 장군의 위업을 기리고 우리 곁에 있게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2008년 9월 11일 ‘맥아더 장군 동상 보존 시민연대’가 주최한 동상 보존 결의대회에 참석한 5천여 명은 자유공원을 맥아더공원으로, 인천대교를 맥아더대교로 부르기로 결의했다.
2008년 11월 10일 (월) 15:20:28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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