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딸의 불효---??
작성자 : 김연욱
작성일 : 2008.12.26 04:48
조회수 : 1,279
본문
나에겐 해마다 추석절이 오면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용서를 빌어야 하는
불효의 아픔이 있습니다.
평생, 편히 한 번을 펴지 못하셨던 그 굽으신 등.
자식이 뿌린 피멍의 쓰라린 아픔 조차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쓸어 안으시고
가셨기 때문입니다.
결혼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이었습니다.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아버지의 가슴에 평생 낫지 않을
피멍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제발 큰 아버지 손잡고
식장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빠한테 뺨을 맞았지만
나는 막무가내였습니다.
"흠,걱정 말그래이,
안그래도 허리가 쑤셔서
그날은 식장에도 못간다 아이가!"
시집가는 딸 마음 상할까봐 아버지는
거짓말까지 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픈 속을 알면서도
결국 결혼식장에 큰 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하는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나도 자식인지라
골방에서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고 계실
아버지를 떠올리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아버지 가슴속의 눈물 얼룩을
지워 드리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 흘러 아이를 갖게 됐을 때,
시집살이에 입덧까지 심하게 하면서도
시어머니한테는 내색도 못하고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서 돌아오던 나는 동네 어귀에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작은 키에 굽은 등,
그리고 걸음걸이는 분명 친정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아버지가 아닐거라고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퇴근하는 남편이 보따리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저 아래 가게 아줌마가 주던데---?"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채취가 묻어 있는
낯익은 보따리였습니다.
예감대로 보따리 속에는
아버지의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청국장이고, 하나는 겉절이데이.
배 곯지 말고 맛나게 먹어래이."
시어른들 볼까봐 집에도 못 오시고
아버지는 청국장 보따리만을
가겟집에 전하고 가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날,청국장엔 아버지의 짜고 쓴 눈물이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펌 한 글==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용서를 빌어야 하는
불효의 아픔이 있습니다.
평생, 편히 한 번을 펴지 못하셨던 그 굽으신 등.
자식이 뿌린 피멍의 쓰라린 아픔 조차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쓸어 안으시고
가셨기 때문입니다.
결혼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이었습니다.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아버지의 가슴에 평생 낫지 않을
피멍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제발 큰 아버지 손잡고
식장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빠한테 뺨을 맞았지만
나는 막무가내였습니다.
"흠,걱정 말그래이,
안그래도 허리가 쑤셔서
그날은 식장에도 못간다 아이가!"
시집가는 딸 마음 상할까봐 아버지는
거짓말까지 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픈 속을 알면서도
결국 결혼식장에 큰 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하는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나도 자식인지라
골방에서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고 계실
아버지를 떠올리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아버지 가슴속의 눈물 얼룩을
지워 드리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 흘러 아이를 갖게 됐을 때,
시집살이에 입덧까지 심하게 하면서도
시어머니한테는 내색도 못하고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서 돌아오던 나는 동네 어귀에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작은 키에 굽은 등,
그리고 걸음걸이는 분명 친정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아버지가 아닐거라고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퇴근하는 남편이 보따리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저 아래 가게 아줌마가 주던데---?"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채취가 묻어 있는
낯익은 보따리였습니다.
예감대로 보따리 속에는
아버지의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청국장이고, 하나는 겉절이데이.
배 곯지 말고 맛나게 먹어래이."
시어른들 볼까봐 집에도 못 오시고
아버지는 청국장 보따리만을
가겟집에 전하고 가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날,청국장엔 아버지의 짜고 쓴 눈물이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펌 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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