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배상만(65회) 인천남부교육청 교육장/어느 작지만 큰 졸업식(퍼온글)
본문
퍼온곳 : 기호일보(09. 2.24)
어느 작지만 큰 졸업식
배상만 인천남부교육청 교육장
![]() |
▲ 배상만 인천남부교육청 교육장
언제나 찾아오는 졸업시즌 2월, 졸업시즌이 돌아왔다. 학교 여기저기서 졸업을 기뻐하는 환호성이 들린다. 졸업식은 인생에 있어 그냥 통과의례로 무의식적으로 지나가게 되고 가족과 함께한 소중한 추억이 될 사진 한 장이 남는다.
아주 특별한 졸업식
얼마 전 나는 아주 특별한 졸업식에 다녀왔다. 식장에 들어섰을 때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오는 주름진 얼굴에 순수한 미소로 다소곳이 앉아 있는 스무 명의 할머니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그분들은 작년부터 우리 교육청과 학습도시 인천시 남구가 협약을 맺고 ‘사랑의 학교(성인기초문해교실)’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평균연령 70세의 학생들이다.
졸업식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이 학교학생 대표의 낭독이 이어졌다.
“앞으로 열심히 배워서 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찹니다...(중략)...글을 다 깨쳐서 맘속에 있는 말을 다 풀어놓을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할머니 학생 대표의 낭독이 또렷이 들려오는 뒤켠에서 45년 전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그림처럼 나타났다. 어머니는 글을 모르셨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 힘든 시집살이 속에 오직 자식들을 위해서 한평생을 사셨다.
그때 당시 나는 시골에서 올라와 고등학교를 유학하게 됐다.
전화통화도 어렵던 시절 고향 식구들에게 소식을 자주 전하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에게서 편지 한 통이 왔다. 비록 맞춤법이 하나도 맞지 않는 괴발개발(고양이발 개의 발자욱)처럼 단순히 의미만 알 수 있는 편지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유학가게 된 후 어머니는 힘든 농사일, 집안일 후 고된 몸을 이끌고 동네야학을 찾으셨다고 한다. 아들에게 편지로 하고 싶은 말씀이 얼마나 많으셨을까?
임의진 시인의 ‘마중물이 되어준 사람’ 이라는 시가 있다.
‘마중물’은 우리 어릴적 펌프질로 물을 길어 먹을 때 한 바가지 먼저 윗구멍에 붓고 뿜어내면, 그 물이 땅 속 깊이 마중 나가 큰물을 몰고 왔었다.
그 마중물을 넣고 얼마간 뿜다 보면 낭창하게 손에 느껴지는 무게가 느껴진다.
이 ‘마중물’이 없다면 우리는 가마솥에 밥 지을 물도 아이들이 씻을 물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졸업식의 주인공들과 나의 어머니 역시 비록 배움의 열망을 가슴속에 감추고만 살았지만 나라와 가족들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진정한 ‘마중물’의 역할을 하신 분들이시다.
그리운 우리의 어머니들
그들의 졸업식엔 화려한 꽃다발도 없었고 졸업식을 축하해줄 부모님도 이젠 이 세상에 없지만 그렇다고 누가 쓸쓸한 졸업식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70세에 한글을 배우겠다는 열망으로 시작해 작은 졸업장을 들고 눈시울을 붉히는 우리 할머니 졸업생들께 큰 박수를 보낸다.
아 그리운 어머니. 아! 그리운 우리의 어머니들이여. 오늘 따라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워짐은….
ⓒ 기호일보(http://www.kihoilbo.co.kr)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