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의 미추홀/새 5만 원권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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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09. )
새 5만 원권
조우성의 미추홀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에 화사(畵師)를 궁중에 두었던 것은 당대의 이모저모를 있는 그대로 후세에 알리고자 함이었다. 그 중에는 최고의 기량을 가졌다고 자타가 평가하는 이들로 구성된 어용(御用) 화사가 있었다.
동양화 8대가의 한 사람으로 칭송 받았고, 운보 김기창, 월전 장우성 화백 같은 이를 키워냈으며 후소회란 화단의 받침돌을 마련해 놓은 이당 김은호도 조선 왕조 최후의 어용 화사로서 크게 활약했던 인물이다.
그가 남겨놓은 순종의 정면관 유지초본(油紙草本)은 극사실적이어서 오늘의 사진과 방불하다. 영조 때 영의정이었던 청사 김재로의 전신 좌상 역시 어용 화사 한종유와 변상벽이 같이 그린 것인데 섬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용 화사 두 사람이 영의정을 그린 것은 왕의 특별한 배려에 의한 것"이라는 안휘준 문화재 전문위원의 설명인데 실제로 그 초상을 대하면 김재로의 진영(眞影)임을 의심의 여지없이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어용 화사는 물론 도화서의 일개 화수(畵手)라 해도 여성의 얼굴을 그려 남겼다는 기록은 과문한 탓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온 궁여지책이 얼마 전 이당이 그렸다고 해서 떼 낸 춘향과 논개 초상 같은 유의 소위 표준 영정(影幀)이었다.
이번에 새로 나올 5만 원권 초상도 그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다. 더구나 어몽룡의 월매도와 이정의 풍죽도를 겹쳐 실은 것은 작가에 대한 큰 결례이거니와 작품을 뉘여 도안한 것 역시 어색하다. '12중 위폐 방지 장치'는 화려한 반면 '여성이 등장한 최초의 지폐'라는 사회적 의미는 희석돼 보인다.
/객원논설위원
종이신문 : 20090302일자 1판 15면 게재
인터넷출고 : 2009-03-01 오후 8: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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