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오광철(53회)의 전망차/전당포 이야기(퍼온글)
본문
퍼온곳: 인천신문(09. 3.23)
오광철의 전망차 /
전당포 이야기
영화의 줄거리이자 연주자 밀러의 삶을 그린 ‘글랜밀러 스토리’에 잠시 전당포가 나온다. 무명이던 시절 밀러가 트럼본을 전당포에 잡히는 장면이다. 연주자로서 악기를 저당한다는 것은 극한상황이다. 1954년작으로 제임스 스튜어트와 쥰 앨리슨이 출연한 이 영화는 오래도록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연주자로 성공을 이루던 무렵 밀러는 군의 부름을 받아 군악대장으로 입대한다. 나치로부터 수복된 유럽의 순회공연을 위해 악천후 중 파리로 비행하다 영불해협에서 실종한다.
서민의 사연이 서려 있는 전당포는 문학작품에도 등장한다. “비범인은 경우에 따라 살인을 저질러도 무방하다”는 엉뚱한 생각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라스콜리니코프를 주인공으로 한 도스또에프스키의 ‘죄와 벌’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죄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갈등 속에 헤매다 신앙에 귀의한다.
전당포는 재물을 담보하고 돈을 꾸어주는 곳이다. 영어로는 Pawnshop이다. Pawn이 ‘저당’ ‘볼모’이니 맞는 말이다. 어느 사회든 서민을 위해 있기 마련이라지만 일제 강점기에 일인들은 전당포를 통해 우리 서민들을 수탈했다. 그들은 고리를 붙여 가차없이 저당물을 가로챘었다. 극작가 이서구씨는 젊은 기자시절 코트를 벗어주고 돈을 얻어 쓴 경험을 토로한 적이 있다.
이 전당포가 우리나라에는 개항 이후 외국인이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그때의 모습을 한장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데, 기와집 대문에 한자 간판과 함께 흰천에 한글로 ‘뎐당포’라고 써서 건 장면이다. 일인들은 1876년 부산·원산, 그리고 인천이 개항되면서 전당포를 통해 식민지 수탈의 방편으로 삼았다. 한 자료는 1909년 경기도 내에만 152곳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불황 등 암울했던 시절의 유물이던 전당포가 지금은 사양길에 오른지 오래다. 이미 1980년대 말을 고비로 지금은 겨우 간판을 걸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원인은 신용카드의 정착이란다. 현찰이 아니라도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동구 만수동에 전당포 살인강도가 들었다고 한다. 영세업자를 덮친 것이다.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입력: 2009-03-22 17:28:14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