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오광철(53회)의 전망차/금곡동 옛길(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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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인천신문(09. 4. 2)
오광철의 전망차
금곡동 옛길
지금은 금창동이라고 해야 알아 듣지만 옛날 쇠가 나는 지역이라고 해서 쇳골, 금곡이라 불렸던 금곡동 48번지-그곳에 쇠뿔고개에서 송림동으로 넘어가는 지름길이 있었다. 이를 테면 산등성이 오솔길이었다. 그길을 따라 서양 선교사의 주택도, 전기회사 변전소도, 창영학교 교장 관사도 있었다. 동구청 앞 신작로인 금곡로를 건너면 지금의 동명학교 정문을 지났다. 그곳은 원래 천연두의 예방접종용 종두연구소였는데, 그곳으로 해서 수도국산으로 이어졌다.
배다리에서 올라오는 우각로는 퍽 가팔랐다는 기억이다. 지금 인천세무서 앞 사거리 코너에 방앗간이었던 듯 검은 양철지붕의 건물이 위험스럽도록 언덕길을 깎아 내더니 결국 건물은 철거되었다. 남자선교사 주택 자리의 세무서 뒤로 창영학교 뒷운동장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은 넓은 풀밭이어서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지금 모 교회가 입주해 있는 사각형 2층의 변전소 아랫쪽에 한인 종사자의 연립주택이 길게 2동 있었다. 그리고 일본인 간부사원의 일식 주택이 3동 있었고, 봄 꽃철이면 벚꽃이 만발했었다. 변전소 언덕에는 송전 철탑이 있었는데 종종 인근 어린이들이 오르려다 감전사고를 당했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었다. 그리고는 미로처럼 얼킨 주택가를 지나면 신작로변에 금곡동 사무소가 있고, 일인 동장이 살았다. 건너편은 일제말 폐쇄당한 작은 교회가 있었다. 금곡성결교회였다.
지금 금창동 일대에는 예전의 거미줄 같았던 골목길이 자동차가 드나들 정도의 소방도로가 나고, 더러 다세대 빌라가 들어섰어도 적막강산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옛날 조석기 교장선생님이 사시던 자리는 모 산업정보고등학교 정문이 되었어도 여전히 한산하다.
재개발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주민자치센터에 어린이도서관을 개설하는 한편, 노인들의 취미교실이 운영되고 독고노인들을 보살피는 등 눈물겨운 거듭나기를 해도 좀처럼 기지개를 펴지를 못한다. 이따금 예전에 살았던 인사가 찾아와 많이 달라졌다며 추억에 잠기는 모습이 목격될 뿐이다.
쇠가 난다고 해서 금곡이라 불렸던 금곡동-금곡이 금곡될 날은 언제일까.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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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4-01 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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