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의심받는 것만으로도(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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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09. 5.21)
원현린 칼럼 /
의심받는 것만으로도
국가치고 이렇게까지 어수선한 나라가 또 있을까. 어느 곳 한 군데 조용하거나 성한 곳이 없다. 매사 해결 방법이 툭하면 집단행동이다. 우리에겐 잘 정비된 법과 제도가 있다. 하지만 법은 사문화하고 시스템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지 오래다.
우리는 지금 시끄러운 사회에 살고 있다. ‘000게이트’다 ‘000리스트’다 하는 국적 없는 말이 우리나라처럼 많은 나라도 없을 게다. 이제 필자의 절친한 친구가 이민을 간다 해도 붙잡을 명분이 없다.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살기 싫어서 떠나겠다고 한다.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전국 법관들이 신영철 대법관이 재판의 독립을 해쳤다며 집단행동에 나서 국민들을 대단히 불안하게 하고 있다. 우리헌법 제106조에는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안이 난마처럼 얽혀 아무리 어렵고 복잡하다 해도 법적 제도적 절차를 밟아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모두가 다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집단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해도 법원만은 안 된다.
대법원이 신 대법관 재판개입 논란 사건과 관련, 일선 지방법원 판사들의 회의가 진행되자 수위조절을 주문했다고 한다. 무슨 홍수수위조절인가. 또 그 모양새가 영 좋지 않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실을 공개하는 일반 법관들은 옳은가. 누워서 침 뱉기다. 똑 같은 사법부다. 이러다간 ‘사법부 너마저’ 소리가 나오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국회야 늘 시끄러우니 그렇다고 치자. 사법부는 다르지 않은가. 법원을 칭하기를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 하고 추켜 세워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법원마저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법적안정성을 해한다면 정의는 어디에서 구현될까. 법원은 불법집단행동을 의법 조치해야 하는 곳이다. 금후 집단행동들이 재판에 회부됐을 때 어떻게 판결할 것인가. ‘법관은 예외’라고 할 것인가.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는 “법관이 국민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된다면 법관으로서는 최대의 명예손상이다. 한 사람의 명예실추는 법관 전체의 명예 실추가 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며 법관들에게 몸가짐을 가르쳤다. 그는 또 “법관까지 돈을 먹으면 나라가 위태롭다”하고 “세상 사람들이 다 부정의에 빠져 간다 할지라도 법관만큼은 정의를 최후까지 사수하여야 한다.”라고 법관들을 향해 당부했다. “법원도 썩었다. 법관조차 믿을 수 없다.”라는 불미스러운 말들이 들려오지 않도록 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지금 일고 있는 사법파동을 지켜보면서 다시 생각나게 하는 말들이다.
의심받는 단계에서 스스로 물러난 인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 증거가 나타나면 그 때 가서 ‘대가성이 없었다.’느니 하고 궁색한 변명을 하곤 한다. 이것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은 허탈하기 짝이 없고 배신감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검찰 주변에 1도 2부 3빽이라는 말이 있다. 1도는 일단 도망가라다. 2부는 붙잡히면 무조건 ‘나는 모른다’라고 부인하라는 말이다. 3빽은 그래도 안 되면 그동안 맺어온 인맥을 통하여 구명로비를 하라. 즉 빽을 동원하라는 것이다.
최근 일련의 뇌물비리 사건과 관련, 위에 열거한 3가지 방법이 통하지 않아 검찰에 소환되는 인사들의 태도 또한 가관이다. 파렴치범들도 수사기관에 연행되면 카메라 앞에서는 얼굴을 가린다. 유독 지체 높은 인사들만이 ‘나는 무죄다’ ‘억울하다’며 당당히 구치소로 향한다.
떼법이 통하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가 과연 법치주의 국가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은 불안하다. 법관들이 진정으로 실추된 사법부의 신뢰회복을 원한다면 법과 제도에 의해 사안을 해결했으면 한다. 법복을 입는 신분답게 법관으로서의 체통을 지키고. 지금의 집단행동이 스스로 법원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도 해 보고.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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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5-20 19: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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