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자기성찰의 시간(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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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09. 7. 9)
원현린 칼럼 /
자기성찰의 시간
주필
민족의 대이동이 있는 날이 두 번 있다. 한번은 설날이고 다른 한번은 추석이다. 이 두 번 말고 또 있다면 그것은 일시 도심 공동화 현상을 가져오는 여름휴가일 것이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도 여름휴가를 국내에서 보내려는 시민들이 많을 것이라 한다. 경기불황과 환율상승, 신종플루 영향 등등으로.
경제가 어렵다. 게다가 풀리지 않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도 우리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온갖 시름 다 잊기 위해서라도 올 여름 한번쯤 일상에서 탈출해볼 것을 권한다.
가는 곳이 어디이건 상관없다. 산, 강, 바닷가 어느 곳이든 좋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다. 게다가 국토의 상당부분이 산이다. 혼자도 좋고 가족과도 좋다. 혹자는 휴가가 사치라는 시민도 있을 것이다. 생활에 지친 몸과 정신을 다잡는 휴가라면 어렵더라도 시간을 내 보는 것도 좋을 성 싶다.
여름휴가하면 바다다. 새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를 빼 놓을 수 없다. 동해바다도 좋지만 교통체증이 없는 인천 앞바다를 권하고 싶다. 백여 개의 섬이 줄지어 있는 인천 앞바다야 말로 여름 피서지로 제격이다. 섬을 지닌 옹진군과 중구청, 강화군은 피서객을 맞이하기 위해 바다도 깨끗이 청소해 놓았다고 한다. 바닷길에는 교통체증도 없다. 굳이 동해까지 가지 않아도 바다를 만끽할 수가 있을 게다.
내륙이 고향인 필자도 어느 해인가 인천 앞바다에 있는 섬엘 간 적이 있다. 그곳에는 온갖 사건사고를 담은 뉴스도 들려오지 않았다. 소리라고는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뿐이었다.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하는 구나”하고 시인은 노래했다. 바다가 아니면 산도 좋고 강도 좋다. 우리나라는 아직은 어디를 가도 좋다. 낯설지가 않다. 세계 각국을 돌아보아도 우리나라 강산만한 데는 없다. 훼손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산 좋고 물 좋은 나라다. 말 그대로 비단에 수를 놓은 듯한 아름다운 산천, 금수강산(錦繡江山)이다. 예로부터 빼어난 경관에 매료된 시인묵객들이 이 강산을 찬미하는 숱한 시문을 남기고 갔다. 고려조 문인 김황원, 영국의 작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 춘원 이광수 등이 “붓끝으로 표현할 수 없다”하고 절경에 비명을 지른 우리 강산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전 국민이 등산객인 나라도 드물 것이다. 등산객 1천만 명 시대라고 한다. 산속에서는 경건해야 하는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어느 산엘 가도 등산객들이 여기저기서 ‘야호’하고 외쳐댄다. 시끄럽기까지 하다. 산속의 토끼도 놀라고 새들도 놀란다. 지금은 날짐승과 들짐승들의 번식기이기도 하다. 산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에서 외쳐대는 소리가 동물들에게는 소음공해이다.
원래 ‘야호’는 구조 신호다. 산에서 조난당했거나 고립돼 구조를 요청할 때 보내는 소리이다. 정작 어려움에 처해 급박한 상황 하에서 이 구조신호를 보냈을 경우 등산객이 그냥 소리 지르는 것으로 알고 지나쳐 버리기 쉽다. ‘야호!’를 외쳐댄다고 호연지기가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들뜨거나 어지러운 마음을 바로잡기 위하여 일상에서 벗어난 휴가일 게다. 조용히 산속에서 명상의 시간을 가져봄도 좋을 듯하다. 문화 시민답게 지킬 것은 지켜가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옛사람들은 산을 정복했다고 하지 않았다. 산에 든다 했다. 인간이 산을 정복할 수는 없다. 일두합자연(一斗合自然)이라 했다. 산속에서 곡차라도 한잔 하면 금방 자연과 하나가 된다.
입산수도(入山修道)한다고 했다. 산에 들면 인간은 겸허해진다. 여행 전문가들은 일상에서 찌든 때를 벗기 위해 산사나 수도원에 머물며 묵상하는 템플스테이나 피정을 권하고 있다.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이만한 게 없다고 한다. 때는 여름휴가철이다. 산도 좋고 바다도 좋고 어디든 좋다.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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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7-08 19: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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