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오광철(53회)의 전망차/복사꽃잎 흩어지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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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09. 8.10)
오광철의 전망차 /
복사꽃잎 흩어지네
<금동이에 저녁 이슬 규방 처럼 맺히면/예쁜 아씨 섬섬옥수 곱기도 해라/빨간 꽃잎사귀 찧어 내어 쪽잎에 말아/등불 앞에서 곱게 돌돌 묶어서/새벽에 일어나 발을 걷어 올리면/거울에 비치는 밝은 빛을 보노라/풀잎을 주울 때면 붉은 범나비 같고/거문고 탈 때면 복사꽃이 떨어지네/두 볼에 분 찍으며 비단댕기 손질하면/소상강 대나무가 눈물 묻어 얼룩진듯/때때로 붓으로 지는 달을 그려노라면/붉은 비가 봄동산을 지나가는듯>
조선조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한시 ‘染指鳳仙花歌’(염지봉선화가)-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이면서”의 풀이다. 여름날 봉선화 꽃잎으로 손톱에 물들이면 불그레한 손톱이 흡사 범나비 같기도 하고 옛날 순임금이 죽자 그의 비가 울어 얼룩진 대나무도 같고 봄동산을 지나는 붉은비 같기도 함을 읊고 있다. 여인의 섬세한 감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옛날 여자 아이들이 저녁이면 봉선화 꽃잎으로 손톱에 물을 들였다. 붉은 꽃잎을 따서 백반을 약간 넣은 다음 섬돌에 곱게 빻아 손톱에 붙이고 헝겊으로 꼭꼭 싸매고 하룻밤 자고나면 붉은물이 들었다. 백반이란 황산알루미늄 따위를 혼합한 염색에 사용하는 약품인데 봉선화 물들이기용으로 구멍가게에서 쉽게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밤에 잘 때 곱게 자야지 그렇지 않으면 싸맨 것이 흩어져 낭패당한다고 해서 두팔을 이불 밖에 내놓고 조심해서 잤다.
매니큐어라는 것이 없었던 시절 봉선화 물들이기는 친환경적 매니큐어 역할을 담당했던 셈인데 오히려 오늘날의 진한 매니큐어보다는 엷게 피어나는 은근미가 복사꽃잎 흩어지듯 더 고왔다. 지금도 봉선화로 물들이는 아낙을 더러 볼 수 있는데 옛날에 비하면 퍽 생소하다. 더러 화단에 완상용으로 심는 것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노랑꽃도 있으니 그것으로도 물들이면 어떻겠는지 시험삼아 권하고 싶다.
지난주 동구 금창동 창영어린이공원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주민 2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봉숭아 물들이기를 했다고 한다. 도심속의 추억만들기였는데 ‘봉선화’라는 가곡이 있어도 물들이기로서는 봉숭아라고 해야 정답고 옛 추억이 피어 오른다.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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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8-09 16: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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