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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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09. 9.24)
원현린 칼럼 /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청문회 정국이다. 여당은 내정된 국무총리를 비롯해 장관후보들을 큰 하자가 없다고 하며 감싸려 하고, 야당은 흠을 잡아내어 철저한 검증을 해야 한다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일전에도 필자는 본란에서 ‘청문회와 도덕성’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우리사회에 만연한 지도층 인사들의 도덕적 불감증을 지적한 바 있다.
인사검증이 있을 때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하나같이 본인과 자녀들의 병역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뿐만 아니다. 탈세에 위장전입은 단골메뉴가 되었다. 부동산실명제법 위반과 더불어 이 4대 불법행위는 이제 처벌의 대상에서 제외된 지 오래다. 병역법, 조세법, 주민등록법과 부동산실명제법은 효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살아 있는 법이라면 만인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민주국가라면 법 앞에 평등하지 않은 특수층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법이 강제력을 잃으면 법으로서 제 기능을 할 수가 없다. 위반해도 강제력이 발동되지 않는 법을 놓고 지키라 하니 누가 지키겠는가.
요즘 항간에서는 고위공직자에게 주어지는 ‘신4대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부끄럽게도 위장전입의 의무, 병역기피의 의무, 부동산투기의 의무, 탈세의 의무가 그것이다. 지도층의 도덕불감증이 가시지 않는 한 조소 섞인 이러한 비아냥조의 표현은 좀처럼 수그러들 것 같지가 않다.
그토록 가기 싫어하는 군대인가. 지금은 전시도 아니다. 하나같이 병역면제를 마치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긴다. 자녀를 군에 보내면 힘이 없는 부모가 되는 나라다.
병역면제를 받기 위해 멀쩡한 어깨에 칼을 대 수술을 했다면 첫째 불효요, 둘째 불충이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불감훼상효지시야(不敢毁傷孝之始也)’-몸은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감히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라고 했으니 불효다. 국가를 위해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함에도 병역을 기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술을 써가며 군역을 면했다면 이는 나라에 불충이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인들 무거우랴…”라는 시문처럼 젊은이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 한다. 젊은이들은 장차 나라를 어깨에 짊어질 주인공이기에 우리는 청춘을 예찬하고 있다.
국방의 의무를 피하려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헌법 제39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라고 병역의무를 명문화하고 있다.
막중국사 대임을 맡으려면 튼튼한 어깨가 있어야 하는데 수술하여 어깨가 약골이라니 무거운 짐을 맡길 수 있을까. 나라의 무거운 짐을 누구에게 맡길까.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떨어져 있어야 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자식을 군에는 보내지 않으면서 어떻게 태평양 건너, 대서양 건너 이역만리 유학은 다 보내는지 알 수가 없다.
6·25전쟁 당시 미8군사령관이던 밴플리트 장군의 아들도 공군조종사로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또한 같은 시기 중국의 모택동의 아들도 한국전에 참전해 전사했는데 모택동은 “내 아들을 전선에 파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자식을 전선에 파병했다면 내가 어떻게 중국인민의 지도자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로마가 위대한 것은 지도층인 귀족들이 솔선수범했기 때문이다. 나라가 위난에 처했을 때 지도층 인사들은 하나같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해 자식을 전장에 내보냈다. 고대 로마 장군 파비우스가문의 경우 어린 후계자만 남기고 일족이 모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것을 보고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로마인 이야기’를 쓴 일본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적고 있다.
아무리 국민소득이 2만 달러니 3만 달러니 하고 구가한다 해도 지도층이 국민의 의무 이행을 거부하는 한 결코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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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9-23 18: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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