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고창수(83회) 인천민족미술인협회 대표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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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09. 9.24)
지역 예술주체와 소통이 먼저
/고창수 인천민족미술인협회 대표
인천시립일랑개인미술관 건립(4)
지난달 28일 인천시는 '인천시립일랑미술관' 건립을 조건으로 이종상 화백과 작품기증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지난 4월 시에서 마련한 지역미술인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일랑미술관' 건립에 관한 계획이 처음 나왔을 때 미술단체대표들과 예술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부당함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시는 이후 공론의 절차 없이 지난 28일 갑자기 양해각서 체결을 발표하였고, 그 소식을 접한 인천문화예술인들은 지난 10일 '인천시립일랑미술관' 건립을 반대하는 '인천문화예술단체 연대'를 결성, 성명서 발표에 이어 건립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성명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첫째, 일랑미술관은 시민사회와 문화예술계를 위한 미술관이라기보다 특정 개인작가를 위한 미술관의 성격이 짙다. 둘째, 아직 70대 초반의 생존 작가를 위해 공공미술관을 설립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셋째, 일랑미술관은 인천시와 시민이 필요로 하는 미래지향적이고, 인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담을 수 있는 미술관과는 거리가 멀다. 넷째, 다른 여러 지역의 자치단체들처럼 예술적 성취가 뛰어나고 국민적 사랑을 받는 인천 출신 연고작가의 공공미술관을 설립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다섯째, 기증작품을 위해 미술관을 건립한다는 논리 또한 개인에게 특혜를 주는 일에 불과하다.
이런 비판에 대해 인천시는 이종상 화백은 국립예술원 회원이고 지폐의 초상화를 두번이나 그린 걸출한 작가이므로 자격에 문제가 없고, 병인양요를 소재로 인천의 개항의 역사를 작품에 담았으니 인천과 전혀 연고가 없는 것이 아니며, 양해각서 추진과정이 공개되지 못한 것은 타도시와의 경합과정 상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이를 비판하는 인천지역 문화예술인들을 지역이기주의에 매몰된 소인배들로 매도하고 있으나 그 논리가 매우 비전문적이며 궁핍하기까지 하다.
성명서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한 예술가의 예술적 평가는 지위나 학벌, 영향력 등과는 별개의 문제다. 특히 미술관 건립은 작가의 사후에 전문가의 연구와 미술사적 검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화백은 아직 예술적 성취가 끝나지 않은 진행형의 현역작가다. 현역 생존작가를 위해 공공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더구나 미술관을 지어주고 재단을 설립해주어 평생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을 충족시켜 줘야 한다는 기증조건은 이미 기증의 의미를 상실한 일종의 거래로, 시민을 위한 공공미술관이 아닌 개인을 위한 미술관 성격이 매우 짙다.
물론 전문가가 아닌 일반행정가의 안목으로는 예술적 평가와 사회적 지위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래서 전문가 자문이 필요한 것이고 다양한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인천시는 이런 절차와 의견을 무시하고 일랑미술관 건립을 계속해서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인천시는 왜 이렇게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는 공공사업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시민과 전문가의 비판을 무시하면서까지 애써 추진하려 하는지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 놓아야 한다.
공공미술관 건립은 막대한 시민세금 투입이 필요한 공적사업이기에 누구의 편견이나 이해가 개입돼선 안된다. 인천시는 인천의 역사성과 정체성, 인천시민의 자긍심을 살릴 수 있는 미술관 건립에 시민세금이 쓰여지기를 바라는 인천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요구를 경청하여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어차피 양해각서라는 것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일종의 약속이므로 지금이라도 일랑미술관 건립을 백지화하고, 지역의 전문예술주체들과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올바른 행정이다.
지역 전문예술주체들과의 소통없이 일방적으로 계속 추진할 경우엔 지역예술단체뿐 아니라 인천의 모든 시민단체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사업 전반에 대한 주민감사와 더불어 내년 지방선거에서 시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종이신문정보 : 20090924일자 1판 15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9-09-23 오후 8: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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