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오광철(53회)의 전망차/도깨비도 좋아하던(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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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09.10. 5)
오광철의 전망차 /
도깨비도 좋아하던
사람들이 보를 쌓는데 아무리 잘 쌓아도 터지고 터져 난감했다. 어느날 도깨비들이 잘 쌓아 주겠다고 제안했다. 대신 자기들이 좋아하는 메밀묵을 한 동이 쑤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도깨비들이 하룻밤새에 번듯하게 보를 쌓았다. 전라도 남원군의 ‘도깨비 보’에 전해오는 전설이다. 그러나 그 보에도 문제가 있었다. 마침 출타 중이라 메밀묵 맛을 못본 도깨비가 심술을 부려 아무렇게 쌓느라 지금도 한 부분은 허술하다고 한다.
도깨비는 메밀묵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지금은 저마다 별식으로 찾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메밀 음식이 그렇게 훌륭한 것이 아니어서 사람들은 별로 탐탁치 않게 여겼었다. 다만 흉년들어 양식이 떨어지면 대용식품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메밀묵을 도깨비가 좋아했다니 신통력을 가진 두려운 도깨비로 여겼으면서도 사람보다 한수 아래로 비하했음이 담긴 전설이라고 하겠다.
예전에 메밀은 가뭄이 심해 논에 모내기를 못했을 때 대신 뿌렸다. 아무리 메말라도 싹을 틔우는 생명력이 대파작물이 되게 했다. 쌀이나 밀에 비교할 것이 못되나 그것을 가루로 내어 묵이나 국수로 먹었는데 사실은 영양가가 풍부하다고 재평가한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이든 재배가 가능하지만 특히 낮밤의 기온차가 큰 곳에서 잘 돼 강원도 영서지방이 꼽을만한 메밀의 산지였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봉평땅을 더욱 유명하게 했다.
소설에서 가산(可山)은 달밤의 메밀밭을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가히 일품이다. 당의 시인 백낙청의 ‘촌야(村夜)’도 한번 읊어 볼만하다고 하나 여기에는 못 미친다. <獨出門前望野田 月明蕎麥花如雪> 풀이하면 ‘홀로 문앞에 나와 들밭을 바라보니 달은 밝고 메밀꽃이 백설처럼 희구나’이다.
근래에 고향의 정취를 그리워해서일까. 뒷전으로 밀려났던 메밀밭을 일구어 눈요기를 한다. 도시민들도 공원 한곁이나 작은 공한지에라도 메밀을 부치는데 요즘 백령도의 메밀밭이 장관이라고 한다. 메밀은 오늘날 건강식이요 추억의 먹을거리로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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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10-04 17: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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