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의 미추홀/막걸리(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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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09.11.11)
막걸리
/조우성의 미추홀
조선 선조 때의 명필 석봉 한호(石峯 韓濩)가 안빈낙도를 읊은 시조에 이런 것이 있다.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켜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아희야 박주산채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시 해설서나 문학 교과서들은 이 풍류가에 나오는 '박주(薄酒)'를 대개 '탁주(濁酒)'라 설명하고 있는데, '박주'에는 맛이 좋지 않은 술, 또는 손님에게 대접하는 술을 겸손하게 이르는' 뜻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박주'를 곧 '탁주'라고 단정하는 것은 전통 술 문화에 대한 오해일 수도 있다. 하긴 '탁주'의 고유어 '막걸리'도 그리 영예로울 건 없다. 따지자면 '별 성의 없이 마구 걸러서 만든 것'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막걸리'는 백성과 고락을 함께 해 온 전통주이다. 조선 정조 때는 금주령을 어긴 자를 귀양까지 보냈는데 농사일에 막걸리가 빠져서는 일이 안 된다는 한 용기 있는 신하의 상소로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조선의 금주령은 식량을 아끼기 위해 일정 기간씩 내렸지만 일제는 전매 수익을 올리기 위해 각지에 소위 '양조 재벌'을 키우며 막걸리를 빚지 못하게 했는데 이를 멋모르고 오늘날까지 답습해 오고 있는 것이다.
전국 농협 창고에 넘쳐나는 쌀 소비를 위해서나 전통적인 생활문화를 부활시킨다는 차원에서도 가정에서의 막걸리 제조는 허가돼야 한다고 본다. 국가가 이를 통제할 명분이 없어진지 오랜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향수와 웰빙 건강주 이미지가 빚어낸 최근의 도 넘는 막걸리 붐은 와인 붐만큼이나 어색하다.
/객원논설위원
종이신문정보 : 20091111일자 1판 15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9-11-10 오후 9: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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