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구속과 불구속(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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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0.)
/원현린 칼럼
구속과 불구속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간의 이익이 상충할 때 어느 쪽의 이익도 해하지 않는 선에서의 결론이야말로 영원한 아포리아가 아닌가 한다. 공무집행 방해죄로 청구된 구속영장의 기각률이 높다고 한다. 영장이 빈번히 기각되거나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이 잦다는 얘기는 우선 먼저 수사기관에 의한 무리한 수사나 기소가 많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소송의 대원칙이다. 헌법에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고 명문화하고 있다. 여기에서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라는 말이 나온다. 형사소송법에서도 수사의 준수사항으로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법은 도처에 인권보호를 위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러한 법조항에 충실, 인신구속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법원이 구속영장을 심사 후 기각하는 것을 지적하는 자체가 사리에 맞지 않는다 하겠다. 인권보호법을 지키려 하는 것이 잘못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법부를 일러 ‘인권 최후의 보루’라고 한다. 법관은 인신 구속여부를 결정하는 구속영장 발부에 있어 신중하여야함은 물론이다. ‘열 사람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시민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가 있듯이.
지난해 공무집행방해 사범 2천519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54%에 해당하는 1천352명의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기각된 사례 중에는 폭행사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흉기로 찔러 상해를 입힌 상해 혐의자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기각한 예가 있다. 법원은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한다. 법원이야말로 법을 수호하여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해야 하는 기관이다. 법원이 영장기각 사유로 드는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 없음’을 마치 전가의 보도인양 사회질서를 저해하는 명백한 형사피의자에게까지 마구 적용한다면 곤란하다.
인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다중이 모여 살아가는 데는 전체적 질서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점을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된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은 영장기각이 잦고 무죄방면이 늘고 있는 것에 대해 혹 무리한 수사와 기소가 없었는지, 법원도 판사가 내리는 판결이 전체적 사회 질서유지에 악영향을 끼치지나 않는지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는 판사, 검사, 변호사가 따로 없다. 아무리 변호사라해도 의뢰인이 유죄임을 알고도 무죄로 만들어 주어서는 안 된다. 법관의 경우 무고한 시민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만이 오판이 아니다. 유죄인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는 것도 오판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평양 복심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살인사건을 심리하면서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얼마 후 진범이 나타나 오판이었음이 드러났다. 그 판사는 오판으로 인한 충격과 자괴심을 이기지 못해 금강산으로 들어가 속세를 등졌다. 이렇게 오판을 참회하면서 법복을 승복으로 갈아입은 판사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효봉스님이다.
최근 4년 간 국내 대형 로펌들이 수임한 형사소송사건의 무죄율이 전체 평균치의 10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이들 로펌들이 전직 고위 판검사들을 영입하고 고액 수임료를 받아 무죄율이 높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여전히 우리사회에 전관예우와 유전무죄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추측케 하는 수치다.
법조주변에는 불구속수사를 하게 되면 변호사가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다. 구속 상태에 있어야 어떻게 해서든 풀려나게 하려고 구속자 가족은 변호사를 찾게 되고 변호사는 더 많은 수임료를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도 법정에서는 인신의 구속과 불구속을 놓고 검찰과 변호사 사이에 공방이 오간다. 그 다툼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데 있어야 하겠다.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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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3-03 19: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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