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오광철(53회)의 전망차/말과 글이 거칠면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0. 3.29)
/오광철의 전망차
말과 글이 거칠면
60년대 초 전망차자의 병아리기자 시절 편집국장께서는 기자들에게 국어사전을 항상 지니고 다니라고 하셨다. 기자가 사전을 빌리자거나 기사작성 중 맞춤법을 몰라 동료에게 물으면 사전을 한 권 사들든지 그것을 펴보라고 하셨다. 물어서 알면 금방 잊어버리지만 사전을 찾아 직접 확인하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면서 신문기자가 사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대패없는 목수와 같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 시절 나이많은 기자라도 어느 정도 한글 맞춤법을 터득하고는 있었다는 기억이다.
그러나 근래 한글맞춤법은 실종된듯 하다. 배우는 학생들은 말고 대개가 그렇다. 학창시절을 경험했을 세대인데도 졸업하면 기억에서 상실한듯 맞춤법을 옳게 구사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흔히들 맞춤법이 어렵다고 말하거나 그것을 자랑처럼 여긴다. 젊은층조차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면서 해괴한 문자나 기호를 남발한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 한글맞춤법 처럼 쉽고 재미있는 것이 없다. 그것은 한글이 과학적이기 때문이다. 요즘 국문법을 별도로 수업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한글맞춤법통일안’이 나온 것은 1933년 10월19일이었다. 조선어학회의 결의에 따라 그 동안 정리해온 안을 시행키로 함으로써이다. 9인정리위원은 이희승 이윤재 최현배 정인승 등이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만큼 그들의 고초는 말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훗날 최현배는 ‘우리말본’을 저술, 문법을 체계화하는데 기여했다. 통일안이 나오기까지 한글을 키우고 다듬어 지킨 사람은 또한 주시경이었다.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려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려지나니라.”-주시경은 언제나 두루마기 차림으로 한글 강습에 교재보따리를 들고 다니느라 ‘주보따리’라는 별명을 들었다. 그는 배재학당 재학 중 인천의 관립이운학교 속성과를 졸업했으나 사회적 혼란으로 해운계에 진출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지난주 동구청이 공문서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맞춤법강의 등 국어교육을 실시했다고 한다. 공직자의 교육이라고 해서 이상할 것 없다.
2010년 03월 29일 (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