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오광철(53회)의 전망차/갯버들 시집오다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0. 3.25)
/오광철의 전망차
갯버들 시집오다
‘芙蓉如面柳如眉 對此如何不淚垂’-양귀비를 잃은 당나라 현종의 슬픔을 그린 백낙천의 ‘장한가’ 한 대목이다. 풀이하면 ‘부용은 그 여인의 얼굴인듯 버들은 눈썹인듯/이를 보노라면 어찌 눈물이 아니 나랴’이다. 버들잎은 흔히 여인의 아름다운 눈썹을 상징했다. 잎뿐 아니라 버들가지는 柳腰(유요)라고 해서 가늘고 부드러운 여인의 허리를 말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글장난이요 버들은 아름다운 봄경치를 표현했다. 동요 ‘고향의 봄’에서 ‘냇가의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를 노래하고 있으니 봄의 온화함의 상징이었다. 소식이 읊은 ‘柳綠花紅眞面目’은 글풀이로야 ‘푸른 버들잎에 붉은 꽃’이지만 인공을 전혀 가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뜻했다. 중국의 린위탕(林語堂)은 버들을 가리켜 아름다운 여인을 연상케 하는 우아한 기품이라고 했다.
이처럼 버들은 아름다움을 노래하나 이별을 뜻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예부터 친구와 아쉬운 석별을 나눌 때 버들가지를 꺾어주었다고 한다. 중국의 옛서울 서안과 교외 함안을 경계하는 위수 천변에는 버드나무를 많이 심었다. 옛날 서역으로 가는 사람들을 이곳에서 배웅할 때 버들가지를 꺾어 주었다는 것이다. 버들 柳와 머물 留는 동음이라 가지말고 머물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서양문학에서는 버들이 슬픔의 상징이듯 쓰여진다. 특히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그렇다. 그의 비극 ‘오셀로’의 여주인공 데스데모나가 죽임을 당할 때 ‘버들의 노래’를 부르며 ‘햄릿’에서도 오필리아가 죽을 때 버들가지에서 떨어진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에서는 저승의 입구에 버들이 서있다.
우리에게 있어 버들은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정확하게는 모른다. 천안삼거리의 능수버들 냇가의 갯버들 길가에 늘어져 춤추는 수양버들-이외에도 많은 종류가 있으나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포플러조차 버드나무라며 혼동한다. 꽃가루 공해라고 가로수조차 천대받는데 이는 꽃이 없는 숫나무를 심어 해결할 수 있다.
엊그제 세계 물의 날에 굴포천에서 환경단체 회원들의 갯버들 심기가 있었다고 한다. 전주천에서 시집온 나무들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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