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사라진 해치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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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0. 4.29)
원현린 칼럼 /
사라진 해치
원래 법(法)이라는 글자는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물(水)과 같이 평형을 이루며 흘러간다(去)는 단순한 뜻이 아니다. 옛 글자를 보면 水++ 去가 합쳐진 회의문자(會意文字)다. 해치라는 동물은 외뿔달린 신수(神獸)로서 이 뿔로 시비(是非), 곡직(曲直), 선악(善惡), 미추(美醜)를 가린다한다. 물(水)과 같이 공평하게 죄를 조사하여 바르지 아니한 자를 제거한다(去)는 뜻이다. 흔히 우리는 이 해치를 해태라고 부른다.
오늘 날 우리가 사용하는 ‘法’자에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별할 줄 아는 해치가 빠져 있다. 지금 우리에겐 해치의 능력이 없는 법조인들이 법을 운용하고 있다.
이처럼 해치는 정의의 동물이었기에 예전에는 법관들이 해치관(해치의 뿔 모양을 만들어 붙인 모자)과 해치복(해치 문양을 넣은 옷)을 법모와 법복으로 사용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늘날 검찰총장에 해당하는 대사헌이 입는 관복의 흉배에 이 해치모양의 그림을 새겨 넣었던 것도 다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라는 의미에서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법조계에서 이러한 해치가 사라진 것이다.
사가들은 조선조 암행어사 제도 실패의 원인을, 어명을 받은 어사들이 지방에 사찰을 나가 그곳 관리들과 토호세력들이 건네는 뇌물과 향응접대를 물리치지 못한데서 찾기도 한다.
검사는 수사기관이다. 지금 ‘스폰서 검사’파문으로 법조3륜의 한 축인 검찰의 모양새가 말이 아니다. 상당수의 검사들이 한 기업인이 터트린 뇌물수수, 향응접대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검사는 법을 집행하는 대표적 기관이다. 이런 사정기관의 책임자인 검사들이 부정을 저질렀다면 누가 수사를 해야 하는가.
검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법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사법연수원도 수료해야 하고 일정기간 시보과정도 거쳐야한다. 이렇게 하여 법 지식과 도덕성, 공직자로서의 사명의식 등을 국가로부터 인정받을 때 비로소 검사로 임명된다.
국가는 이들에게 법의 집행을 맡기기에 손색이 없다고 판단하였기에 맡긴 것이다. 사법파동이나 이번의 경우처럼 검찰파동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과연 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지난 23일 법의 날 기념식장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은 “우리 사회가 법의 지배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법을 만들고 다루는 국가기관부터 솔선수범해 법과 원칙을 준수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강국 헌법재판소장도 “선진 자유민주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법과 원칙이 지배하는 법치주의를 강고하게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귀남 법무부장관 또한 ‘스폰서검사’와 관련, “엄정한 진상규명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기관에서 법을 어기는 예는 우리의 경우 흔하다. 법조계 수장들의 이 같은 말들이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아니면 으레 그래 왔듯이 이번에도 또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는지 지켜 볼일이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법불가어존(法不可於尊)’-법은 신분 높은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이라는 옛 말이 있고, ‘법을 만드는 사람들일수록 법을 어기는데 능통하다’라는 아프리카 반투족의 속담도 있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법을 어기는 것을 여반장으로 알고 있는 한 우리의 법치는 요원하다 하겠다. 지체가 높다하여 부정을 사하여 준다면 누가 법을 지킬 것이며, 누가 누구에게 준법을 명하겠는가. 높은 신분일수록 부정은 더 엄격히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누구보다도 높은 도덕성과 책무감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2010년 04월 2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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