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잔인한 계절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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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0. 4.15)
원현린 칼럼 /
잔인한 계절
백령도의 날씨는 그제에 이어 어제도 바람이 강하게 불고 기온도 낮았다.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 된지도 오늘로 19일째다. 얼마 전 부터 방송에서는 서해 백령도의 기상 상태를 맨 먼저 전하고 있다. 봄인데도 꽃소식을 전하기에 앞서 기상예보는 침몰함 인양의 어려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제보다 강풍이 불고 유속이 빨라지리라’는 안타까운 소식뿐이다.
꼭 일주일 전 필자는 본란에서 기상악화로 천안함의 인양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며 불손하게도 하늘을 향해 천도시비(天道是非)를 따져 물었다. 한 주 내내 일기는 고르지 못했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있어 올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천안함이 침몰된 백령도 앞바다는 기상악화로 3주일이 다 되도록 거친 파도가 일지 않은 날이 없었고 비바람이 불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다. 이로 인해 침몰함 인양 작업이 더디고 느려졌다. 우리의 위기대응능력의 유무는 차치하고라도 고르지 못한 날씨는 급기야 실종자 가족들로 하여금 ‘구조중단’이라는 단장(斷腸)의 결단을 내리게 했다. 변화무쌍한 바다 날씨 탓에 침몰선의 인양작업이 늦어지면 질수록 잠들지 않고 철썩 거리는 바다와 함께 국민들도 함께 울었다. 사망자 가족과 실종자 가족 가릴 것 없이 우리에게 있어 4월보다 잔인한 달은 일찍이 없었을 게다. 이러한 연유에서 금년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기록될 것이다.
천안함 사건으로 출어를 하지 못해 올해 바다 농사를 망친 도서지역 주민들의 생업이 막막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조용하기만 하던 인천 강화지역에 구제역이 나돌아 살아있는 소와 돼지를 살처분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주민들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하고 있다. 구제역은 섬 지역 경제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구제역의 전파력은 대단하다한다. 구제역은 돼지가 감염될 경우 소 보다 확산속도가 100배에서 3천배에 이른다한다. 전국으로의 확산을 막기 위해 차단에 비상이 걸렸다. 살아있는 가축을 매몰해야하는 축산농들이다. 청정지역으로 알려져 나들이객들로 북적이던 이 섬도 잔인한 봄을 맞고 있다.
주민들은 이러한 아픔을 본지에 글을 써 피력해 오기도 했다. 이렇듯 우리에게 불행이 겹쳐왔다. 역경을 헤쳐 나가야 하겠다. 힘을 합치면 못 이룰 일이 없다했다. 간과하지 말고 보살펴야 할 이웃들이다.
먼 나라 이야기지만 폴란드 대통령부부를 비롯한 정부대표단 88명과 승무원 8명 등 모두 96명이 탄 전용기가 추락, 전원이 사망했다. 4월은 폴란드 국민에게 있어 가장 잔인한 달일게다.
반정부 시위사태로 8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있는 태국의 유혈사태도 그 나라 국민들에게 있어 잔인한 달일 게다.
이밖에도 불경기로 가계에 허리가 휜 서민가정들과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있어서도 4월은 잔인한 달이다. 회사가 부도가 나 직장을 잃거나 하여 실직자가 된 직장인들에게도 4월은 잔인한 달이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가 핀 것을 보면 분명 봄이 왔다. 하지만 이렇듯 봄을 알리는 영춘화(迎春花)들이 피었는데도 우리는 꽃을 반길 수가 없다. 분위기가 아니다.
봄은 만물이 약동하는 계절이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계절이다. 봄에 파종을 게을리 하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다. 봄에 씨앗을 뿌렸기에 풍성한 가을을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봄은 약속의 계절이고 희망의 계절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에게 있어 봄은 그래왔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처한 처지가 그렇지 못하다.
꽃망울을 터트렸다가 폭설과 한파를 맞아야 했던 봄꽃들에게도 올 봄은 잔인한 달이다. 말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상처받은 모든 이의 아픔이 하루 속히 가시기를 기원해 본다.
2010년 04월 15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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