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영혼을 기다리며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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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0. 9. 2)
원현린 칼럼 /
영혼을 기다리며
다소 기온이 떨어졌다하지만 여전히 후텁지근하다. 해마다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피서를 간다하지만 삶에 지친 영혼을 쉬게 하기 위해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휴가이기도 하다. 필자도 얼마 전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우리 민족을 두고 외국인들은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살고 있다고들 한다. 사실이다. 가정에서도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렇다. 학생을 둔 학부모들도 자녀가 밥도 빨리빨리 먹어야 하고 공부도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 남보다 한발, 아니 두서너 발은 앞서 나갈 수 있다며 다그친다. 빨리빨리 행동해야 엄마의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국의 어머니들한테 대기만성이란 없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도 생겨났지만 별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우리에겐 오로지 빨리빨리 만이 있을 뿐이다.
이 같은 우리의 조급성은 최근 국무총리 후보를 비롯한 장관 후보들에 대한 청문회 과정에서도 입증됐다. 자녀를 남의 자식보다 학군 좋은 곳에서 빨리 가르치려고 이곳저곳에 위장전입을 하고, 남보다 빨리 많은 재화를 축재하려하다가 쪽방 촌 문턱에 걸려 넘어지는 등 신분 높은 사람들의 삶에서도 나타났다.
이제는 끝난 상황이지만 40대 젊은 총리 후보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 중 하나다. 그래서 청문회 과정에서 후보는 기억을 못한다거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겁지겁 거짓말로 일관하다가 종국에는 재상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중국의 강태공은 나이 80에 재상이 됐다. 출사하기까지 빈 낚시 대를 강가에 드리우고 오랜 세월 때를 기다린 것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사람도 큰 인물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이다. 경험이 부족한 약관의 출세는 위태롭기가 짝이 없다 했다. 일국의 국정을 총괄하는 지위에 있는 총리감을 찾는 일이다. 총리라면 능력과 덕이 있어야 한다. 벼도 일정량의 햇빛을 받아야 영글듯이 재덕을 겸비하려면 최소한의 인생경력이 요청된다.
너나 할 것 없이 정신없이 앞 만 보고 달려온 우리들이다. 빨리빨리 가다가 넘어지면 천천히 감만 못한 경우도 있다. ‘조심조심’과 ‘천천히’에 대비되는 ‘빨리빨리’ 문화가 가져온 부작용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이제는 잊혀져가고 있지만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준공을 눈앞에 두었던 신행주대교 교각이 쓰러지곤 했다. 아파트와 백화점이 무너지기도 했다.
우리는 쫓기듯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고 있다. 어찌 보면 불행한 민족이다. 수없이 많은 외침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의 경제성장을 앞당긴 것만은 사실이다. 한국의 이 급행선호 문화는 오늘날 디지털 강국을 만들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다. 영혼을 떼어 놓다시피 하고 오로지 앞으로만 달음질쳐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명작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영혼이 살아 숨 쉰다’고 하거나 ‘영혼을 다 바친 작품’이라고들 하며 찬탄한다.
인디언 원주민들은 말을 타고 질주하다가 가끔은 멈춰 서서 뒤 돌아 본다고 한다. 말을 쉬게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자신이 힘에 부쳐 그런 것도 아니다. 너무 빨리 달려 왔기에 영혼이 뒤 따라 오지 못했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라 한다. 영혼이 도착하면 다시 가던 길을 달린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한 문명인 탐험가가 원주민 3명을 고용, 밀림 탐험에 나섰다. 3일 밤낮을 쉬지 않고 걸었다. 그러다가 짐을 진 원주민들이 더 이상 길을 가지 않고 갑자기 멈춰 섰다. 탐험가는 재촉했다. 원주민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다가 원주민 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쉬지 않고 너무 오랫동안 걸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미처 따라오질 못하고 있다. 우리는 영혼을 기다린 것이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영혼이 따라올 수 없도록 쫓기듯 살아간다면 삶의 의미가 없다. 앞만 보고 내닫다가 정작 소중한 것을 잃고 사는 것은 아닌지, 여름의 끝자락에서 한번 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주필
2010년 09월 02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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