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의 미추홀/자식사랑(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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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0. 9. 8)
조우성의 미추홀 ( 622 ) /
자식사랑
6ㆍ25전쟁 때의 실화다. 1951년 4월, 밴 플리트 장군이 미 8군 사령관으로 부임해 왔다. 그는 미 육사를 졸업한 후 노르망디 작전에서 무공을 세웠고, 특히 '발지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이미 전사에 오른 인물이었다.
맹장 밴플리트가 출중한 지휘력을 발휘해 중공군을 격퇴하고 있을 때, 그의 외아들 짐 밴플리트 중위는 공군 조종사로 참전해 아버지와 함께 싸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야간 폭격 차 출격한 후 실종되고 말았다.
그 때 미 5공군 사령관은 밴플리트에게 수색대를 편성해 수색 작전에 나설 것을 건의했으나 그는 '내 자식만 살릴 수는 없다'는 뜻으로 그를 사절하고 평소처럼 의연하게 한국군 제2군단 창설식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세상 부모 치고 자식을 사랑하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랴만, 밴플리트는 생사가 경각에 달린 외아들의 구조를 스스로 사양했던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혹은 공정성을 실천한 고뇌에 찬 결단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저만 살겠다고 36계 줄행랑을 놓았던 임진왜란 때의 조선 관군들이나 야반도주하듯 백성을 버리고 몽진에 나섰던 왕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 같은 희생이 '이 풍진 세상'을 버티게 하는 힘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존경의 염을 받아 마땅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었다. 반면에 아버지 후광을 등에 업고 정계에 나가 쇠고랑을 찾던 아들들도 모자라, 이번에는 제 딸 귀한 줄만 알아 정부 조례까지 고쳐가며 남의 자식들을 들러리 세운 외교통상부의 눈먼 수장까지 나왔다.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 들이다.
/객원논설위원
2010년 09월 07일 (화) 19: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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