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의 미추홀/광화문 현판(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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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0.11. 8)
광화문 현판
/647회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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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목공예는 세계적으로 평판이 높다. 절제된 미의식에 곁들인 편이성과 견고성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화려한 기교를 뽐내는 유럽의 그것과 요령부득의 침묵을 지닌 일본의 '단스' 등과는 품격이 크게 다르다.
일본의 예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도 아사카와 다쿠미의 책 '조선의 소반' 발문에서 "일상생활을 이렇게까지 윤택하게 해 주는 작품은 세상에 흔하지 않다."며 그 우수성에 대해 최상의 찬사를 표한 바 있다.
서안(書案), 경상(經床), 연상(硯床), 사방탁자, 책장, 머릿장, 이층장, 약장, 반닫이, 소반, 찬장, 뒤주, 목안(木雁) 등이 다 알아주는 목공예품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반상이 가리지 않고 애용했던 '반닫이'였다.
앞쪽 면이 반만 열린다 해서 '반닫이'라 불렸던 이 가구는 위쪽 상판은 장식대, 그 속은 물건을 넣어두는 장(欌), 은은한 나무결과 주물 장석은 독특한 의장으로서 예술적 풍취를 자아내고 있는데 견고성 또한 최고였다.
판재는 괴목을 제일로 쳤다. 바닷물에 3년, 응달에 3년을 두어 더는 터지거나 뒤틀리지 않도록 기다렸고, 그것을 두껍고 넓은 널판으로 켜서 튼튼하게 짜고, 사개물림을 한 후에 감잡이에 경첩, 쇠장석 등을 베풀었다.
그 옛날 장인들은 반닫이 하나를 만들 때도 나무가 자리 잡을 때까지 수년을 기다렸던 것이다. 백제의 반가사유상이나 고려의 팔만대장경이 오늘까지 찬연한 빛을 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광화문 현판은 3개월 만에 균열이 생겼다. 공기를 단축하게 한 관료들의 '무지'가 빚은 해프닝이었다.
/객원논설위원
2010년 11월 08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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