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의 미추홀/8·23 포전(砲戰)(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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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0.12. 1)
8·23 포전(砲戰)
/657회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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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이 약 2시간에 5만여 발의 포탄을 제 민족에게 쏘아댄 사건이 있었다. 1958년 8월23일 금문도에서 일어난 소위 '8·23 포전' 이다. 52년 전의 일이지만, 민간에 포탄을 쏘아댔다는 점에서 중국과 북한은 같다.
'같은 민족끼리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개탄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서 '민족'이란 존재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해치는 장애물일 뿐이다. '항미원조'의 혈맹이 궤를 같이하는 이유이다.
'포전' 첫날, 국부군은 2백여명이 전사했고, 민간인도 11명이 사망, 18명이 부상당했다고 당시 'AP통신'은 전세계에 숨가쁘게 타전했다. 희생자 숫자만 봐도, 연평도보다 금문도 상황이 훨씬 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대한민국 국민이 낸 세금일밖에 없는 돈 '60억달러'를 이런저런 명분을 붙여가며 도와주던 제 민족의 머리 위에 그 화답인 양 '불벼락'을 내렸으니 세상천지에 이보다 큰 환멸이 있을까 싶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터였다. 그런데 또 입을 열어 연평도 주민을 '인간 방패' 운운하며 장광설이니 가소롭다. 예로부터 말 목장과 어전(漁箭), 어업 등으로 대대손손 살아온 이들이 어째서 '방패'란 말인가?
폐일언 하고, '자유중국'은 중국의 두 손을 들게 했다. 20여 년간 포를 피해가며 군민이 섬을 요새화하여 사생결단 버틴 것과 미7함대가 해상봉쇄망을 돌파한 결과라고 한다. '대피소를 새로 지어 달라.'는 옹진군의 요구를 정부가 8년째나 묵살했다는 보도다. 그 옛날의 '자유중국'과 오늘의 우리가 크게 비교 된다.
/객원논설위원
2010년 12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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