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의 미추홀/'가지 않은 길'(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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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0.11.24)
'가지 않은 길'
/654회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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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 '가지 않은 길'이란 것이 있다. 과거 수십 년 간 국어교과서에 게재돼 우리 고교생들도 익히 알고 있는 시다. 그러나 이 시는 세계의 명시라는 명성과는 달리 의미 모순에서 출발한다.
'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말할 것도 없이 사람이 다녀야 생긴다. 시공을 넘어 수많은 이들이 같은 곳을 걸어야 비로소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가지 않은 길'이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관념 속 길일밖에 없다.
숲속에 있어 눈에 띄지 않는 오솔길도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내가 가지 않은 길'이라고 했다면 모르나, 사람이 '가지 않은 길'은 세상에 없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창조주 이후 천지에 전혀 새롭거나 독창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 앞사람의 간 길을 싫건 좋건 이어갔던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빨간 거짓말을 한다. '가지 않은 새 길'이 있으며, '내가 그 길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앞서 간 사람의 자취를 열심히 지워버리며 유아독존적 자만이 묻어나는 구호를 외친다. '새 세상이 도래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몇 년 지내놓고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음을 사람들은 서서히 깨닫게 된다.
먼저 간 사람의 자취가 남아 있는 길을 제가 좀 더 아름답게 닦겠다고 하면 어떨까? 그래서 더 크고 더 우아한 세상으로 가는 길을 만드는 데 제 자신이 일조한다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축복이리라 믿는다. 그런데도 오늘도 먼저 간 이들의 흔적을 지우기에 서로 바쁘다. 사회 곳곳이 후진적 모습이다.
/객원논설위원
2010년 11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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