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藏頭露尾(장두노미)의 한 해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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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0.12.23)
원현린 칼럼 /
藏頭露尾(장두노미)의 한 해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발표되곤 한다. 금년 한 해는 한 마디로 어떤 해였는가를 나타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문구가 궁금하던 차에 교수들은 ‘藏頭露尾(장두노미)’를 내 놓았다.
어느 해나 그래듯이 올해에도 역시 씁쓸한 의미의 사자성어다. 쫓기던 타조가 머리를 덤불 속에 처박고서 꼬리는 미처 숨기지 못한 채 쩔쩔매는 모습에서 생겨난 말로 진실을 숨겨두려고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는 이미 드러나 있다는 뜻이다. 속으로 감추면서 들통 날까봐 전전긍긍하는 태도를 빗대기도 한다.
참으로 감추려는 것이 많았던 한 해다. 교수들은 올해는 4대강 논란, 천안함 침몰, 민간인 불법사찰, 예산안 날치기 등 많은 사건의 와중에서 정부는 의혹을 해소하려고 하기는커녕 진실을 감추려는데 급급해했다는 것이다.
흔히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다’라고 한다. 진실 공방이 펼쳐지는 대표적인 장소는 법정이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증인을 채택한 경우 채택된 증인은 다음과 같이 선서를 하도록 하고 있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서합니다.” 게다가 “선서는 기립하여 엄숙히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모두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거액의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지금까지 뇌물을 공여했다고 검찰에서 밝힌 사람이 말을 바꾸어 돈을 건넨 사실이 없다고 종전의 진술을 번복하고 나서 검찰과 피의자간에 진실공방이 한창이다.
숨김과 거짓행위의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사자성어 서너 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뜻의 以掌蔽天(이장폐천), 좋은 물건을 간판으로 내세우고 나쁜 물건을 팔거나, 표면으로는 그럴 듯한 대의명분을 내걸고 이면으로는 좋지 않은 본심이 내포되어 있는 것을 일컫는 羊頭狗肉(양두구육), 남을 농락하여 자기의 사기나 협잡술 속에 빠뜨리는 행위를 비유하는 말로 朝三暮四(조삼모사), 이 밖에 윗사람을 속여 권세를 마음대로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에 指鹿爲馬(지록위마) 등이 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 가짜가 판치는 짝퉁천국이다. 이럴 때일수록 진품명품을 가릴 줄 아는 혜안이 요구된다. 아쉬움이 남는 한 해를 구태여 빨리 가라 할 필요는 없다. 새해라 해서 서둘러 앞서가서 맞이할 필요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꼭 일 년 전, 필자는 본란에서 ‘새 달력은 조금 더 있다 걸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올해는 빨리 갔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도 말 그대로 다사다난 했던 올 한 해이기 때문일게다.
해마다 새해의 사자성어는 희망이 넘치는데 365일이 지난 연말의 사자성어는 언제나 비관적이었다. 旁岐曲徑(방기곡경)-일을 바른 길을 좇아서 순탄하게 하지 않고 정당한 방법이 아닌 그릇되고 억지스럽게 함을 이르는 말(2009년), 護疾忌醫(호질기의)-병을 숨겨 의원에게 보이기를 꺼린다는 뜻으로, 잘못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말(2008년), 自欺欺人(자기기인)-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뜻으로,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이는 행위를 비유하는 말(2007년), 密雲不雨(밀운불우)-구름은 끼었으나 비가 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일이 성사되지 않은 것을 이르는 말(2006년) 등이 그것이었다.
일 년 후 연말에 선정되는 한 해의 결산 사자성어가 올해 희망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던 태평한 세상의 평화로운 풍경을 뜻하는 ‘康衢煙月(강구연월)’ 그대로 였으면 좋겠다. 온갖 거짓과 위선은 가고 정의와 진실만이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신묘(辛卯)년 새해가 되길 기원해본다.
2010년 12월 23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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