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의 미추홀/이길용 선생(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0.12.17)
이길용 선생
/664회 조우성의 미추홀
![]() |
||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영웅 손기정 선수. 그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워 보도함으로써 민족적 기상을 천하에 알린 동아일보 이길용(李吉用) 기자가 인천 영화학교 출신이라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또 그가 인천 야구 초창기에 산파역을 맡아 헌신했던 선구적 체육인이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원로 야구인 최영업 선생이 '주간인천'에 실린 '야구 인천의 걸음마 시작은 이길용 씨의 공로'라는 내용 그대로다.
"야구 도구는 모두 자제자급(自製自給)이었고, 볼은 이길용 씨가 서울서 얻어다 준 것으로 제법 연습을 쌓았다. 그 때 배재(培材)를 졸업하고 영화학교 선생으로 잠시 와 있었는데, 이분이 우리 편의 매니저 역할을 했다."
최 선생은 "당시 선수들은 스파이크, 스타킹, 운동모는 말할 것도 없고, 운동복 한 벌 제대로 차려입은 사람이 없었지만, 대담무쌍한 지략을 지닌 이길용 씨의 지도로 최초의 한일전을 웃터골운동장서 벌였다."고 회고했다.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도 별로 회자되지 않고 있다. 선생은 일본 동지사 대학 유학 후, 대전철도국에서 근무하던 중 임정의 기밀문서를 전달하다가 3년간 영어의 몸이 되었고, 일장기 말소 사건 때도 심한 옥고를 치렀다.
6·25전쟁 때는 납북되는 비운까지 당했다. 최근 아들 태영 씨가 "정치보위부에서 다시 아버지를 붙잡아 갔다. 북측이 항일투사인 아버지를 체제 선전에 이용하려고 납치한 것 같다."며 당시의 정황을 밝혔다. 서대문형무소 수감 후의 행방은 모른다고 했다. 살아 계시면 111세. 선생의 명복을 길이 기원한다.
/객원논설위원
2010년 12월 17일 (금)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