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류창현(67회) 인천논단/ 토담집 어린 소년의 공포(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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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0.12. 7)
토담집 어린 소년의 공포
/류창현 객원논설위원
정확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로 추측된다. 나는 밤만 되면 집안에 도둑이 들까 두려워서 항상 불안해했다. 널판으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토담집 대문이 늘 불안해서 자기 전에 몇 번이고 허술한 대문고리가 잠겼는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내가 그토록 문단속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은 6·25전쟁을 전후로 할아버지, 아버지, 형님, 누이 등 일곱 식구 중 네 식구가 모두 잘못 되어 어린 생각에도 집안에 도둑을 지킬만한 든든하고 믿을만한 어른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남은 식구라고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나 단 세 식구인데 남자는 나 하나뿐이니 어린 나이에도 집안단속의 책임감이 강했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비슷한 꿈을 꿀 때도 있는데 어렸을 때는 수시로 도둑이 대문 고리를 열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꿈과 대문을 열려는 도둑과 문고리를 잡고 싸우는 꿈을 꾸다가 놀라움에 깨고 나면 식은땀으로 몸이 흠뻑 젖은 상태이곤 했다. 가정적인 불행 속에서도 나는 북한보다도 우리 집안을 노리고 있을 것 같은 도둑이 더 공포의 대상이었다.
믿을 곳이 없어 도둑을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믿을 만한 정부가 있고 늘 국민과 국가를 위한다는 많은 정치인들이 있고 특히 막강한 대한민국 군대가 있어 항상 마음이 놓이고 든든했다. 더욱이 GDP가 세계 10위권이고 OECD회원국이며 지난달에는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 회의도 개최해 세계를 대표하는 각국의 정상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왔기에 당연히 국민의 안전과 국가안보는 기본적으로 잘 갖춰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믿어왔던 정부는 항시 적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최전방 서해 5도 주민들의 생존과 생계를 지켜줄 군사력 증강이나 유사시를 대비하는 데는 소홀했다.
그보다 호화청사와 인기위주의 축제나 놀이공원, 놀이기구 등을 만드는데 더 많은 신경을 썼고 북한의 침략에 의한 희생이나 국민들의 불안은 그 때뿐이었다. 국민들 또한 우리가 휴전중인 불안정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모두 잊고 있는 것 같다. 휴전협정 이후 북한은 수십 차례에 걸쳐 휴전협정을 수시로 위반해 왔다. 그래도 나는 그간의 사건들은 우리 국군이 손 쓸 수 없는 기습적이고 일방적인 공격이었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으며 우리 군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 3월의 천안함 사건 때 46명의 꽃다운 해군 장병들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국민 모두는 분노와 슬픔속에 오열하면서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정부와 군과 책임 있는 정치인들의 다짐을 듣고 그들을 믿고 의지해 왔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의 말이 귓가를 맴돌고 있는데 우리는 또 당했다.
적의 턱 밑에서 외롭게 버티고 있는 최전방 지역이라면 적의 불시 공격을 항시 예상하고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철저하고 완벽하게 대비 했어야 했다. 전 국방장관은 사격준비를 위해서 15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도 정상적이고 잘한 대응이라고 한다. 그는 현실은 스타크래프트가 아니라고 기발한 생각으로 변명했지만 주민들의 생사가 달려있는 현실은 컴퓨터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보다 더 철저하고 신속했어야 했다. 책임 있는 한 사람의 사고와 판단이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걱정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사건 후 대통령께서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서해 5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충분한 군사장비로 무장됐어야 했다. 북한의 코드에 맞장구를 쳐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운 햇볕정책과 좌우대립으로 국가 안보에 위기의식을 느낀 국민들이 정권교체를 이루어 주지 않았나? 그렇다면 안보에 관한한 과거와 달리 철저히 대비했어야 했다. 대통령의 말대로 당하고 나서 수십 번 수백 번의 성명이나 담화 등은 아무 소용이 없다. 침략행위는 오히려 침략자가 더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어야 했다.
외국의 언론들은 앞 다투어 동정어린 시선과 함께 휴전 후 60년 이상을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흡한 방어자세를 비웃고 있다. 우리는 지금 실체적인 적과 대치하며 전쟁을 하고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국방백서에서 주적이라는 글자를 뺀다고 해도 북한은 엄연한 우리의 주적이다. 제발 책임 있는 모든 정치인들은 다른 모든 통치행위에 우선해서 대한민국의 영토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집중해 주기를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유비무환의 자세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서 55년 전 토담집 어린 소년이 앞으로는 북한 이라는 도둑으로부터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2010년 12월 08일 (수)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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