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류창현(67회) 인천논단/순수한 영혼의 삶(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1. 1. 4)
순수한 영혼의 삶
/류창현 객원논설위원
2007년9월5일부터 11월25일까지 KBS1에서 6회에 걸쳐 방영한 다큐멘타리 ‘차마고도’ 제2편은 중국 사천성 더거현 까링딩 마을에 사는 다섯 명의 장족 원주민들이 차마고도의 길을 따라 옛 티벳의 고도인 라싸까지 2,100km에 걸친 순례길을 소개하고 있다. 순례자들은 티벳 불교를 믿는 불자들로서 자식을 먼저 잃은 사람, 페병을 앓고 있는 사람, 가난한 생활에 고통 받는 사람 등 모두 삶의 고통과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몸 전체를 부처님께 바친다는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수행방법으로 매일 6km씩 6개월 동안에 2천100km를 가야하는 고난의 순례길이다. 높은 산을 넘고 깊은 물을 건너야 함은 물론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도 나지 못하는 돌길과 설산과 바위산과 늪지대 등을 지나야 하고 깎아지른 듯한 수백 미터 낭떠러지가 만들어낸 깊은 협곡과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해발 5천400km가 넘는 린즈 미라산의 고원지대를 넘어야하는 고행길이다. 그들의 순례길을 보면서 나는 도를 위해 설산에서 고행을 했다는 부처님이나 광야에서 방황을 한 공자님이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고통이 이러했을까? 아니면 더했을까 덜 했을까를 비교해볼 정도였다.
2006년 10월 2일 출발한 이 고난의 순례길은 6개월을 넘겨 다음해 4월 20일 티벳 자치구의 구도(區都)인 라싸에 도착함으로 오체투지의 순례는 끝난다. 길고도 긴 오체투지의 고통스런 순례는 끝났지만 라싸에 도착한 그들에게는 티벳인들이 영혼의 상징으로 여기는 조캉사원에서 2개월에 걸쳐 10만배를 해야 하는 마지막 수행이 남아 있었다. 여느 중생들이라면 백팔배도 벅찰 정도인데 삼천배도 아닌 10만 배를 한다니 순례자들이 살아있는 부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는 장족들은 길을 가다 순례자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보시를 하는데 ‘순례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부처님에게 보시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순례의 길에 오르는 것일까?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기도 어려운데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라싸로 가면서 제 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고통받으며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언젠가는 죽을 것을 알기 때문에 다시 태어날 다음 생을 위해 순례를 합니다.” 또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들을 위해 고행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위하고 그들의 평안을 위하여 순례를 떠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하여 기도할 때 진정한 선을 행하는 것이며 윤회의 업에서 해탈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순례의 과정을 보면서 ‘과연 저 순례자들로 하여금 저런 고통을 참아가며 순례의 길을 끝까지 수행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를 자문해 보았다. 어디에서 15개의 나무 장갑이 다 닳고 8개의 가죽 앞치마가 다 뚫어지고 이마에 군살이 박힐때까지 순례를 할 수 있는 인내와 의지가 생겼을까?
새해가 밝았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새해 아침을 맞았을까?
동해로 동해로 새해 첫날에 떠오르는 태양을 남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보려고 달려간 사람들은 과연 한 순간이라도 내가 아닌 남을 위한 기도를 했을까? 밤잠을 설치며 종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보신각으로 달려간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잠시라도 남을 위한 배려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잘못된 말 한마디에 생각 있는 선량한 백성들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분노와 부끄러움에 고통 받고 있음을 짐작이나 할까?
우리는 나 아닌 남을 위한 생각을 얼마나 하면서 살고 있을까? 단맛과 향기로움에 취하고 화려함과 배부름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모든 종류의 작은 고통마저도 회피한다. 물질과 돈의 맛을 안 우리들에게는 작은 고통를 참아낼 힘과 용기도 없다. 우리들은 고통스럽지만 남을 위한 순수한 영혼의 삶을 지켜가는 순례자들과는 달리 인간으로서의 순수한 영혼을 너무나 많이 그리고 빨리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극한의 고통을 참아가면서도 모든 생명체를 위해서 선행을 베푸는 순수한 순례자들의 삶처럼 새해에는 우리 모두 작지만 나 아닌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자.
2011년 01월 04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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