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나라를 지키는 것은 학교다"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0.12.30)
원현린 칼럼 /
"나라를 지키는 것은 학교다"
본래 문하(門下)라는 말은 문하생이 드나드는 권세 있는 집을 가리킨다. 또한 스승의 집에 드나들며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란 뜻도 있다. 문하란 말은 문하생(門下生)과 같은 말이고 문생(門生)이라 하기도 한다.
왕통은 중국 수(隋)나라 말기의 유명한 학자다. 그는 학문에 통달했으며 식견이 넓어 세상의 이치를 꿰뚫고 있었다. 당시는 수(隋)와 당(唐)이 천하를 다투는 때라 많은 인재가 필요했음으로 왕통에게 고위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 쇄도 했다. 그러나 왕통은 이를 거절하고 하분(河汾)이라는 곳에 집을 마련하고 나라를 바로 세울 인재를 가르치는데 힘을 기울였다.
학문에 깊이가 있으며 교육방법 또한 뛰어난 왕통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각처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을 선발해 엄격한 틀에서 교육을 시켰기에 왕통의 문하에서 학업을 마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후일 엄한 가르침을 견뎌내어 당 태종 이세민의 명신이 된 위징을 비롯한 방현령 등 걸출한 인물들이 왕통의 문하생 이었다.
이로 인하여 당시의 사람들 중에 왕통의 문하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 한다. 그래서 ‘하분문하(河汾門下)’라는 말까지 생겨나기도 했다.
올 한 해 이루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사건사고도 많았다. 그 중에 신문을 펼치면 가장 충격으로 와 닿곤 하던 것이 학생들에 의한 교사 폭행 사건이다. “학생이 스승을 구타하다.”란 제목은 이제 톱뉴스에서 밀려 난지 오래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고 여교사를 성희롱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는가하면 심지어 초등학생이 교사를 구타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던 한 해다.
한 마디로 교실이 무너진 한 해였다.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다. 일선 학교에서는 학교 이미지 손상을 생각해서 교내에서 일어나는 학생 간이나 사제 간의 폭력사건을 덮으려 한다. 이로 인해 교내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줄지 않고 있다고 경찰은 분석하고 있다.
차량이 드문 시절 교통사고는 신문에 대서특필 됐었다. 이제는 하루 수 십 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다친다. 일일이 다 기사화 할 수도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마도 학생에 의한 교사 폭행사건도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져 갈 지 모른다. 교통사고가 그래듯이.
빗나간 자식 사랑이 아이의 장래를 망친다. 자식을 가르치되 엄하게 하지 않는 부모는 그 자식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했다. 방치하면 경로효친은 사라지고 종국에는 노인학대로 이어진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학대받는 부모들은 스스로가 자식을 패륜아로 키웠기 때문이다. 해법은 1차적으로 가정교육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공자는 일찍이 모든 가르침은 예(禮)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그는 사람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예를 실현하려 무진 애를 썼다. 이제는 우리도 ‘자식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교권은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학부모들도 툭하면 학교를 찾아 교사를 폭행 하곤 한다. 걱정치 않을 수 없다. 학교에서 교사가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교사들의 허탈감과 무력감일 게다. 오늘도 일선 학교 교사들은 “인도(人道)가 땅에 떨어졌는데 사도(師道)가 있겠느냐”며 한숨짓는다. 이런 풍토 하에서 ‘하분문하생’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무리다. 씨 뿌리지 않고 거두려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대들보와 기둥으로 쓰여지게 하기 위해서는 휘어져 자라는 나무를 똑바로 세워 주어야 하는 것은 정한 이치다. 제멋대로 자란 나무가 도편수의 눈에 띄일 리 없다.
새해에는 학교 문턱이 닳아 없어지도록 왕통의 문하생들로 넘쳐났으면 한다. 교육이 바로서지 않고는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국가의 운명은 그 나라 청년교육에 달려있다”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병사가 아니라 학교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2010년 12월 30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