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의 미추홀/무죄(無罪)(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1. 1.24)
무죄(無罪)
/680회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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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겁결에 벌어진 일이라 고민했던 신 박사는 그해 3월 말, 죽산 조봉암 선생을 만나 사퇴의 뜻을 밝혔고, 선생은 그 자리에서 일체의 종용없이 "나는 그럴 수 있는 신 박사님이 부럽습니다."며 받아들였다고 한다.
필자가 한옹 선생께 들은 바로는, 두 분은 1945년 10월경 손가락 치료차 지금의 중구 신포동에 있던 '신 외과 의원'에서 첫 상면을 하였고, 치료 중 서로의 식견과 인간성에 매료되어 인연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그 얼마 후인 1946년 5월, 한옹 선생을 부럽다고 했던 죽산 선생은 그 뒤를 잇듯이 한성일보에 '존경하는 박헌영 동무에게'라는 글을 써 박헌영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공산주의와의 결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
그해 6월에 있던 '미소공위촉진 인천시민대회'의 성명서에서도 선생은 "조선민족은 공산당되기를 원치 않는다... 조선의 건국은 노동계급의 독재나 자본계급의 전제를 반대한다."고 명시하며 '진보주의'를 천명했다.
선생이 그 이후 거둔 건국 공로는 세상이 아는 일이다.
그러나 '평화통일'를 주창했다는 것을 빌미로 선생을 '사법살인의 피해자'가 되게 한 것은 역사의 오점이었다.
대법원이 54년 만에 그를 번복해 '무죄 판결'을 했다. "만인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복지사회를 건설하자."는 유지가 해타(咳唾)로서 오늘 다시 귀를 때린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1월 24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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