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 막말이든 말멋이든 모두 폐기처분해야(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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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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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채훈의 중국산책/
막말이든 말멋이든 모두 폐기처분해야
근래들어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기대 이하라거나 진정성없이 부풀려 진다는 지적이 많다. 하기야 그건 고사성어의 품격에 못미쳐도 한참 못미친다. 예전에 있었던 일이나 중요한 사건, 전해내려오는 내력있는 것을 나타낸 어구와 며칠이나 기억될지 모르는 유행성 어휘를 같은 성어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부터가 무리였는지 모른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신년사에서 태화위정(太和爲政;화합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겠다)을 내놓아 뜻있는 국민들을 실소케 했다. 철학은 없고 울림은 물론 없고 반성조차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청와대는 조금 이해할 만했다. 일기가성(一氣呵成), “일을 단숨에 매끄럽게 해낸다”는 뜻이라고 했는데 출전(出典)은 16세기 중국 명(明)대의 호응린이란 분이, 당(唐)대의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의 작품 <등고(登高)>를 평하는데서 쓴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간 빗나갔다. <중국교육부성어전>에 따르면 “一氣呵成, 就用來比喩文章的 氣勢流暢, 首尾貫通…”이라고 했다. 옮겨보자면 두보의 시를 읽을 때 다른 칠언율시(七言律詩)처럼 음율따라 하는 것보다 거침없이 흐름을 따라 단숨에 읽어야 이 작품의 참맛을 느낀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었다. 크게 틀린 바는 아니나 매끄럽게 마음에 와닿지 않는 걸 어쩌랴.
두보라는 시인, 등고라는 작품은 오늘에도 우리 마음을 참으로 안타깝게 한다. 그는 부패무능한 당현종의 치하에서 갖은 고난을 겪어야 했고 끝내는 굶다시피하다가 병사했다. 한심한 황제를 만나야 했던 지식인의 불행을 몸서리치게 당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그가 죽기 3년전, 병약한 몸을 이끌고 중양절(重陽節;음력 9월 초아흐레에 벗들과 높은 산봉에 올라 술한잔 나누는 풍습이 있었다) 행사에 갔다가 가슴깊이 젖어오는 인생의 비애와 슬픔을 읊은 것이었다. 마지막 구절은 더욱 아릿하다. 료도신정탁주배(?倒新停濁酒杯; 몸은 늙고 쇠잔하여 탁주 한잔마저 손에서 내려놓네). 녹록치않은 시인의 인생살이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매해 시정 방침처럼 사자성어를 내놓았다. 2008년 당선자 시절에 시화연풍(時和年豊;화합의 시대를 열어 나라가 태평하고 풍년이 든다), 2009년에는 부위정경(扶危定傾; 위기를 맞아 잘못을 바로잡고 나라를 굳건히 한다), 2010년에는 일로영일(一勞永逸; 한번의 노력으로 오랫동안 안락을 누린다). 발표 당시 이들 모두가 말멋도 있고 기백도 있어 보이고 마치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쓰는 세상이 올 것같은 기분을 주긴 했다. 그동안 정치인들의 거친 막말에 식상하던 국민들에게 신선해 보이기조차 했다.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더해서 이미 존재하는 감정에 다른 감정을 결합시키는 이른바 “엎혀가기 막말”이 판치는 이유를 빤히 들여다 보면서 정초가 되면 궁금증반 기대감반으로 기다리는 사람도 꽤 있었다. 사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사자성어의 풀이와 우리 삶의 형편은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말이다.
기왕지사 정치인의 막말보다 말멋 정치가 근사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말멋이든 막말이든 이렇듯 투철한 기개나 감동없이 언어남발이 계속된다면 결국 정치인들은 의식이 무뎌져 자신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정치적 승부를 걸고 있는지 망각할 것이다. 대화와 존중, 소통과 공감없이 소수의견을 존중까지는 아닐지라도 다수결의 원칙까지 파괴하면서 우리 공동체의 내일을 운위해서 뭣할 것인가?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정치, 인간의 냄새가 사라진 사무실 책상머리에 앉아 서민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구조를 개선하는데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면서 자신의 내적 성찰로 삼아야 할 가르침을 대중앞에서 함부로 떠드는 지도층 인사들이시여! 언젠가 김모 의원이 “바늘로 뜰 시간이 없어 공업용 미싱으로 드륵드륵…”하고 떠들었던 그 무례함을 착한 서민들이 답습하지 않게끔은 해야하지 않겠는가. 민심의 강물이 넘치기 전에 꼭 부탁드린다.
2011년 01월 07일 (금)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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