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장(將)은 있어도 수(帥)는 없다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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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2.18)
나채훈의 중국산책 /
장(將)은 있어도 수(帥)는 없다
1883년, 개항장 제물포(오늘의 인천 중구)에 가장 먼저 진출하여 화물운송, 우피무역, 광산 개발에 주력했다가 1년여만에 영업을 중단한 서양 무역상사가 이화양행. 영문으로는 Jandine&matheson co. 동인도회사 소속의 무역선 선장이던 월리엄 자딘과 제임스 매디슨이 중국 광동성의 광주에 설립하여 아편과 중국 홍차 무역에 종사한 것이 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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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는 인천개항이 있기 8년전에 상해, 오송간 철로를 부설했는데 이것이 중국에서 최초의 철도였다. 선봉호(先鋒號)라고 명명된 기관차가 이 두곳을 하루 6왕복하여 막대한 이익을 올렸으나 1명의 병사가 깔려죽는 사건이 일어나자 상해 당국은 운행 정지를 명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 28만 5천 냥을 이 회사에 지불하고 사들인 기관차를 ‘철제 도깨비’라며 양쯔강에 내버렸다. 이때 유명전(劉銘傳)이 대만성(台灣省: 원래 복건성 소속으로 이전까지 대만도라 불리웠고 성이 된 것은 청불전쟁 후) 첫 성장이 되면서 기관차를 잘 몰라 도깨비라고 보는 무식을 탓하며 그 기관차와 레일을 대만으로 옮기겠다고 청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원래 청나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태평천국의 부장이었으나 뛰어난 지휘력을 인정받아 관군이 되어 부하를 이끌고 베트남으로 들어가 프랑스군과 싸웠는데 그의 군사는 잘 싸웠고 강했다. 조정에서 유명전을 불러 대만성을 맡긴 것은 그가 훌륭한 장수 일뿐더러 적극적으로 근대화를 주장한 행정관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철도의 중요성을 역설한 사람도 유명전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아무튼 그의 뜻과 달라 첫 기관차가 물속에 들어갔고, 그는 5년여동안 대만에서 선정을 베풀고 병 때문에 사임하여 귀향했다. 얼마 후 인천 앞바다에서 청일 양국의 함대가 격돌했다. 이른바 청일전쟁이다. 청군은 여지없이 패했고, 조정에서는 유명전을 기용하라는 거센 요구가 힘을 얻었다. 그때 일본에게 패한 이유로,
-장(將)은 있어도 수(帥)가 없다- 라며 유명전 외에는 ‘수’에 해당하는 무인이 없다는 유명한 말이 나왔다.
북양대신 이홍장은 급거 유명전에게 출마 요청의 전보를 보냈는데 유명전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노령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의 답신에 다음과같은 문구가 있었다.
-양쪽 귀는 먹고 왼쪽 눈은 벌써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눈은 희미하게 한줄기 빛만 보이고 햇빛을 보는 것조차 두렵다. 이에 겹쳐 가을이 되면서 집안에 죽는 사람들이 잇달아 우울한 마음 말할 수 없고 간질환마저 점차 더해져서 왼쪽 다리가 마비되어 걸어다니기도 힘들다.
이 내용은 개인의 건강상태를 말한 것이었으나 마치 당시 각국의 도발앞에 속수무책이었던 청나라 형편을 말하는 것이었다는 지적도 많았다. 58세의 노장군이 기울어가는 국운을 보면서 자신의 몸을 빗대 이홍장에게 분발을 촉구했음직 하다. 사실 유명전이 대만을 떠난 후에 후임이었던 소우렴이란 자는 대만주둔군이 유명전을 따르던 군대라 하며 절반으로 줄이는 바보짓을 했고, 청일전쟁에서 패하자 복건성 수사제독 양기진과 광동 남오진 총병 유영복을 보내 수비하라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조치를 했으나 때는 늦어 전쟁 뒤처리 강화 회담이 시작되었을 때 일본군은 대만해협을 제압하여 청나라가 외국에서 수입하는 무기를 차단했고 결국 청나라 조정은 극도로 문란해진 대만성을 포기하며 일본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적어도 한 개의 성(省)을 통째로 외국에 내준 것은 이때가 처음인 일로, 아편전쟁에서 패하여 영국에 홍콩을 내준 것 이상의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육침(陸沈: 나라가 망하는 것을 이렇게 말했다)을 겪은 탄식의 글이 남아 전해온다.
-왜 정치를 개혁하고 부국강병하려 하지 않았는가? 왜 교육을 제대로 시켜 실업을 진흥시키지 않았는가? 왜 관이 경영하는 사업에 민간의 경쟁을 허용하지 않았는가? 왜 인재가 고루 등용되지 않았는가? 왜 기관차를 물속에 침몰시키는 어리석음이 통하는가? 이 많은 ‘왜?’뒤에 있는 비난은 하늘을 향해서가 아니다. <나 자신을 향해 말하는 것이다>로 끝맺고 있는데 마치 오늘의 우리를 향해 질타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 어쩌랴.
2011년 02월 18일 (금)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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