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교육자 추포 선생(퍼온글)
작성자 : 이덕호
작성일 : 2011.03.04 08:47
조회수 : 1,309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1. 3. 4)
교육자 추포 선생
/( 695 회)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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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 출신인 추포 선생이 인천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54년. 전후 혼란기에 지역치안의 책임자인 경찰서장으로 부임해서였다. 그러나 정작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전쟁고아와 불우청소년을 보살피는 일이었다.
인천경찰서 강당은 하루아침에 야학당(夜學堂)이 되었고, '인천소년수양원'이라고 먹글씨로 쓴 나무간판이 내걸렸다. 서장 교장과 경찰관 선생들이 먹여주고, 늦도록 가르치니 세상이 이구동성으로 상찬하였다.
'인천소년수양원'이 '인천소년직업학교'으로 커지고, 나아가 '도원고등공민학교'를 거치는 동안, 사회 안정과 경제 발전으로 정규 교육기관으로서의 몫을 감당하기에 이르러 문을 연 것이 오늘의 '광성학원'이었다.
광성중·고등학교가 그같은 따뜻한 인간애적인 건학이념으로써 출범해 사학의 명문으로서 자리매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두가 설립자인 추포 선생이 생애를 통해 정성 들여 씨앗을 뿌리고 가꾼 귀결이었다.
1994년. 생애의 마지막 사업으로 낙후된 고향 김제시 공덕면에 벽성대학을 세우고, 초대 학장으로서 학생들에게 기술교육을 베풀었던 것 역시 선생이 진정한 교육자였음을 웅변한다. 졸수(卒壽)의 연세에도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흥국부민'을 역설하시던 사자후를 이제 듣지 못하게 되었으니 애통하다. 삼가 명복을 빈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3월 0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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