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주춧돌이 촉촉해지면 우산을 펴라(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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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3. 3)
원현린 칼럼 /
주춧돌이 촉촉해지면 우산을 펴라
작은 실 구멍 하나가 큰 제방을 무너트린다. 무슨 일이든지 일어나기 전에 전조가 있다. 이를 무시하면 난(亂)일 경우 무대책으로 화를 맞는다. 징후를 옳게 판단하고 대비하면 위험을 막거나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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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윤장산(礎潤張傘)’이라는 말이 있다. 주춧돌 ‘초’자에 젖을 ‘윤’, 펼 ‘장’자에 우산 ‘산’자다. ‘주춧돌이 촉촉이 젖어오면 우산을 펼쳐라.’라는 뜻이다. 우리가 겪는 환란의 대부분은 이 ‘주춧돌의 경고’를 간과한 탓에 겪지 않아도 될 것을 겪는 일이 많다.
갑자기, 별안간, 느닷없이 닥치는 일은 흔치 않다. 땅 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지진(地震)의 경우도 일어나기 전에 개구리 떼나 쥐, 뱀 동물들이 징후를 감지하여 부산한 움직임을 보인다고 한다. 이 같은 한갓 미물들도 닥쳐올 일의 조짐을 감지한다.
인간이 이를 제대로 판단하여 분석하면 환란을 막을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치거나 오판하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것은 지나간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우리의 경우, 임진란이 그랬고 그 외의 전란도 그랬다.
일찍이 조선조 율곡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에 군사 10만을 길러야 한다며 ‘10만 양병설’을 주창했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이를 무시하는 오판을 하여 7년 왜란이라는 대 환란을 겪어야 했다.
준비가 철저하면 닥쳐오는 매사에 대응하기가 쉽다. 그렇지 않으면 화를 당하고 만다. 1997년 외환위기가 그랬고 지난해 천안함 폭침에 이어 연평도 포격도, 구제역도 모두가 주춧돌의 경고를 판독하지 못한 결과들이라 하겠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공직기강은 말이 아니고 안일무사가 팽배해 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황금에 눈이 멀어 종착역이 뇌옥(牢獄)이다. 지금 무엇보다 우리를 허탈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구제역 대재앙’이다. 얼마든지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늘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시민들만이 온전히 피해를 떠안곤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구제역도 처음에는 징조가 있었을 것이다. 이를 지나쳤거나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리비아 내전사태로 인한 중동 발 유가급등은 또 다시 우리 경제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우리에겐 앞날을 내다 볼 줄 아는 선견자가 없는 것인가.
이제 수일이 지나면 온 산천이 봄꽃으로 새 단장을 할게다. 언 땅을 비집고 나오는 생명력에 경외심이 들곤 한다. 여리디 여린 새싹이 어떻게 그 두꺼운 흙을 헤집고 나올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서다. 시민들은 이렇게 자라 녹음방초(綠陰芳草) 우거진 산야(山野)로 봄나들이 나간다. 하지만 올해에는 아무리 따스한 봄볕이 우리를 밖으로 불러내도 갈 곳이 없을 것 같다. 도처에 소와 돼지 무덤이기 때문이다. 농촌의 농부들은 한숨짓는다. 까닭은 위에도 구제역 매몰지요, 아래에도 구제역 매몰지이기 때문이다. 해토비가 내려 얼었던 흙덩이가 풀리면서 그토록 우려했던 환경 대재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며칠 전 내린 그다지 많지 않은 양의 봄비에 가축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내비친다는 소리가 들린다. 다가오는 우기를 걱정치 않을 수 없다.
이런 마당에 차마 언감생심 봄나들이는 상상도 못한다. 발아래에 자식처럼 키우던 가축 수백만 마리를 묻고 어떻게 봄을 찬미할 수 있는가.
어느 해보다 잔인한 봄을 우리는 맞고 있다. 올 봄, 소 돼지 무덤위에서 우짖는 새소리는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봄날 뒷동산에서 들려오곤 했던 새봄의 오케스트라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땅 속 깊은 곳에서 절규하는 소 돼지의 비명일 게다. 말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주춧돌의 경고를 무시하고 우산을 펴지 않은 대가가 너무 크다.
2011년 03월 03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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