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인천月尾島山의 왕벚나무와 57回
본문
게재자 주
출처: 57회 동문회 게시판
작성자: 57회 동문회 총무, 복 성진
재 구성: 67回 劉 載峻
인천月尾島山의 왕벚나무와
仁高57회동창회간에 숨겨진 이야기를 말한다
(최종 수정본입니다)
인천의 월미도는 인천 중구 북성동에 소재한 육계도(陸繫島)로서 섬의 모양이 반달의 꼬리처럼 휘어 있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크기는 0.66km2의 섬이었으나 1920년대 돌 축대를 쌓아 내륙과 연결 폭 12m에 총 길이 2.5km의 포장도로인 월미도 다리를 건설 하였다. 월미도는 구한말 나라가 기우러져 갈 때쯤에는 외세열강들의 침탈과 패권 장악을 노리고 전쟁을 일으켜 청일전쟁(1894.6-1895.4)과 노일전쟁(1904.2.8)이 월미도 앞바다에서 있었으며 그 후에도 세계사적 사건들이 이 앞바다에서 전개 되었고 현대사 중 한국전쟁 1950.9.15 인천상륙 작전은 세계2차대전 프랑스의 노르망디 상륙작전보다 규모가 크고 대역전의 승기를 잡았다는데 역사적 의의는 크다. 이렇듯 월미도는 대한제국멸망과 신생독립국가 탄생인 대한민국의 수난의 역사와 함께 격어 왔다. 우리들의 유년기인 초등학교 때는 원족(소풍)으로 문학산 또는 송도 월미도를 걸어 다녔다. 그때 본 월미도 산의 핀 벚꽃은 환상적이 였다. 그 벚나무 꽃은 노일전쟁 이후에 일본인들이 심고 일본의 국화인양 자랑하며 그 시절 미국 와싱톤 도심에 까지 일본의 나라 꽃으로 벚나무임을 알리며 기증 식재하여 준 기록이 있으며 오늘날 까지도 와싱톤 도시의 명소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왕벚꽃 나무는 우리나라 제주도 의 한라산과 전남의 대둔산에서 자생하고 있는 고유의 대한민국 토착 수종으로 밝혀 졌고(천연기념물로 지정됨-큰꽃 벚나무)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일본인들이 슬그머니 가져다가 자기네 것인 양 개량하고 우수품종으로 길러내 그들의 나라꽃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벚꽃나무는 이런 저런 시련을 격어 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6:25 한국 전쟁 때 인천상륙으로 당시에는 공산군의 점령지였던 인천의 월미도는 적군의 거대한 포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수 천 명의 인민군들이 진지를 지키고 있던 터이라 아군과 연합군의 거대한 함포 사격의 집중 포화를 맞았고 제공권을 차지한 미군과 유엔군의 전투기들의 끊임없는 공격은 월미도는 이름 그대로 풀 한포기 없는 불모지 땅으로 변 했었다. 이런 처참한 모습은 59년전 1950년9월13-9월15일에 일어났던 것이다. 이것이 또한 우리민족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 였슴을 생생하게 보여준 증거였다. 그후 1953.7. 27 한국전쟁은 휴전협정으로 포성만 멈췄지 오늘 이 시간 까지도 59년이 지나는 세월 에도 지워지지 않고 여전히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왕국인 폭력적 집단의 위협은 변함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황무지로 변했던 땅 월미도는 휴전 협정 후 십 여년 간 미군이 주둔하여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 되었고 수목은 야생적 원시림 같이 대부분 아카시아 나무와 이름 없는 잡종나무들과 칡넝쿨 등이 뒤 엉켜 붙어 볼 품 없는 수풀 동산의 모습으로 약 반세기 동안 흘러갔다. 그러나 이 월미도는 미군이 철수한 후에도 우리 해군이 주둔하면서 군 통재구역이 되었고 월미도 해안가등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민간인의 출입 통제는 여전하였다. 그러던 중 인고57회 출신으로 새얼문화재단의 상임이사인 정공훈 동문(당시 서해조선사장)은 늘 월미도 벚꽃나무를 원상 회복 시켜 인천의 제일 명소로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 였다. 정 사장은 평소 친구들과 만날 때면 입버릇처럼 월미도의 DREAM LAND 자연 동산을 말 해왔다 서울 사람들이 인천에 가보면 갈 데가 마땅치 않다고 불평인 것을 잘 알기 때문 이었다. 정공훈 사장의 기도 때문 인지는 모르지만 때 마침 인고57회 동기동창 출신이 월미도 주둔 해군 제2함대 사령관 으로 부임한 것이다. 그가 바로 안병태 제독 (해군 소장) 이였다 (후에 해군참모총장역임-해군대장) 그때가 1989.8인데 정공훈은 氣가 번쩍 솟구쳤다. 찬스는 왔다! 千載一偶의 기회가 이런 때를 말하는 것 인가 그는 우선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님과 상의 하면서 월미산 살리기 작전지도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지용택 이사장님은 주로 인천시청(심재홍 시장) 인천상공회의소(이기성 회장) 인천일보 , 경기은행 등 각계 기관 각 단체를 맡아 맹열히 활동하면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것을 호소하여 큰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그 당시 인천시장 심재홍 씨는 특별 추경을 통해 7억원의 예산을 내어 주었다. 그리고 많은 상공인들이 나무 한 구루씩 심기 운동에 자원 동참 하였으며 경기은행에서도 많은 직원들이 자원하여 지원과 관심을 보내 주었다. 인천일보에서는 기획기사를 통해 적극적으로 월미산 살리기 운동을 펼쳐주었다. 그 다음에는 정공훈 사장은 안병태 사령관을 만났다. 안제독과는 동창 중 친한 친구 지만 이번에 만남은 더없이 기쁘고 말할 수 없이 반가웠다. 그리고 는 평소 지니고 있던 그의 꿈을 이야기 하였다. 單刀直入 으로 안 제독! 인천에 온 김에 나와 함께 인천을 위해 인천시민을 위해 큰일 한번 해 봅시다. 몇 년 후에는 월미산이 인천시민의 품으로 돌아 올 텐데 그 기간에 월미산을 잘 가꾸어서 돌려줍시다. 이것은 인천 시민과 해군의 협동으로 가능 합니다. 라고 제의 했던 것. 해군에서는 덕장과 지장을 겸한 최고의 지휘관으로 이름이 잘 알려진 안 제독 그는 자리에서 일언지하에 주저 없이 승낙하고 해군 군부대에서는 제일 먼저 월미산 꾸미기 기동반을 편성 심모 중령을 팀장으로 임명 수목 교체 개량 작업반을 운영케 하였다 그리고 아카시아등 잡종 나무를 베어 내고 각종 새로운 수목의 수종을 균형을 맞춰 심어 나갔다. 소나무 전나무 향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산 수리나무 쉬 나무 벗 나무 등이 식목 했는데 이때 제일 먼저 도착한 나무는 인고 57회동창회(당시회장 김현규)에서 왕벚나무 200주를 기증 했던 것 그때 5년생 한그루에 3만원으로 총계 600만원을 모아 구매한 것 재경57회 동문회에서도 함께 지원을 하였다 그것이 지금 월미도 산에서 최고의 명품 왕 벚꽃 나무로서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멋지게 생긴 벚나무 인 것이다 월미 공원 정문 입구(주차장방향에서)에서 왼쪽 길을 따라 남쪽으로 200M 쯤 올라가면 길 양쪽으로 20여년된 아름드리 벚나무가 울창하게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곳 길 옆 벚나무 앞에 조그만 화강암으로 다음과 같이 표시해 놨다. “왕벗나무 200그루 심다. 인고57회 일동 1990. 3. 31” 이 표지석을 시작 기점으로 왕벚나무 일연 번호가 부착 되었는데 산중턱 일주 도로인 남쪽으로 돌아가는 약300여 미터 구간 미관 지역에 1번부터 205 번까지의 고유번호가 정성스럽게 매겨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년이 지난 세월에도 한그루의 나무도 허실 고사 되지 않고 아름드리 거목이 되어 우리들 앞에 새로운 아름다운 옷을 입고 59년전의 불타는 월미산의 상처를 말끔히 씻고 인천 시민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원래 이사업은 안병태 제독이 해군2함대사령관 재임시(1989.8-1991.9) 에 첫 삽을 뜨고 시작한 것이지만 안제독이 월미도를 떠난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해군에서 인천시청 지방정부로 이전 할때 까지(2001.9) 약 10년 동안 정성것 가꾸고 키워서 물려준 것 해군은 그동안 10,000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군에서 대민사업에 약속을 10년간 지키며 이행한 것도 역사적인 사례로서 기록해야 할 일인 것이다. 해군은 10,000그루의 나무를 심고 돌비석에 표적을 해 놓았는데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 인천상륙작전의 전적지인 월미산을 아름답게 꾸미고자 정성을 쏟아온 해군장병들이 만그루 식수에 즈음하여 그 프르름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이 비를 세웁니다. 1997. 4. 5 해군제2함대 장병일동 ” 이것은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새얼문화재단의 정공훈 동문과 해군함대사령관 안병태 제독의 생각이 대한민국을 풍요로운 선진 문화대국을 건설하는 일에 의견 일치라는 좋은 만남의 동창이 큰 몫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기록에 남기고자 한다. 두 사람간의 공의로운 이타적인 대의에 신의를 지키고 끝까지 마무리 지어준 안병태 제독에게는 자랑스러운 인고인 상 이 수여 됬지만 그의 고매하고 충성스러운 애국심은 요즘 같이 혼잡한 정치판도에 물들지 않고 대양부국 대양해군에 관하여 연구를계속하고 있다 언젠가는 그의 꿈은 이루어 질 것을 믿는다. 안제독은 후에 해군참모총장을 지냈고 새얼문화재단 상임이사 정공훈은 원광해운 코스모스 사장을 지냈으며 두 사람 모두 정년 퇴임 하였다. 월미산 살리기 운동의 연장선에서의 인천광역시청은 많은 노력을 해 왔는데 이름도 서부공원이라 지칭하고 월미산 정상에 대형오석 비석에 다음과 같은 글자가 한글로 색여져 있다. “월미공원귀환 기념비” 인천 앞 바다의 어여쁜 눈썹, 월미도가 반세기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분쟁과 단절의 바다 황해가 평화와 교류의 바다로 헌신해야 하는 찰라, 월미도가 눈부신 자태로 돌아왔다. 월미도는 보았다, 일본 및 서구 열강이 어떻게 은둔의 왕국 조선을 위협 했는가를 그리고 월미도는 온몸으로 피를 흘렸다. 한국 동란의 한복판을 가르면서 월미도는 내내 전우의 땅 새해 용왕님도 숨고 사람의 발길도 끊어졌다. 아! 우리모두 월미도 귀환을 축복하자. 비들기의 전언이 한반도 전체로 동아시아 전역으로 그리고 마침내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산되기를 기원하며 월미공원을 삼가 인천 시민과 평화의 기획에 기꺼이 참여할 세계시민에게 바치노라. (최원식 선) 2001.10.15 인천시장 최기선. 으로 기록해 놓았다. 무심코 읽고 넘어가기에는 어쩐지 불길하고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왠일일까 평화공원으로 순수하게 인천시민에게 바치는 것은 당연한 것을 평화의 기획에 기꺼이 참여할 세계시민에게 바친다. 라고 한 구절에는 어쩐지 씁쓸하고 개운치 않은 것은 필자의 무지에서 온 기우일까 월미산 기념물 비석 하나에도 순수성이 결여 됬다면 우리는 이 월미산 정상 기념비에서 진정한 역사의 순수한 기록을 찾아 나서야 하며 이곳에서 새로운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을 지적하고 싶다. 작년 2008년 4월19일 인고57회 동창생 졸업50주년기념 행사때 우리동창들은 안제독과 정공훈 동문을 중심으로 반원으로 대열을 이루며 월미산 왕벚꽃나무 아래를 산책 하였다 30여명의 동창생들은 감계무량 하였다 이 나무들은 토양이 좋은 환경에서 잘 자라 주었다 20년 동안 자란 벚나무는 아름드리 어른 나무로 자리 잡고 있었다 활짝 핀 벚나무 꽃은 60년전 전쟁의 폐허의 잿터미에서 다시 살려낸 기적과 같은 상징의 표상인 것이 었다 20년전 젊은시절 좋은 생각을 가진 몇사람이 이처럼 270만명의 인천 시민에게 기쁨을 줄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큰 보람으로 남을 것이다 仁高 57회 동창회와 月尾島山 왕벚나무의 숨겨진이야기는 기록으로 남겨 놔야 후세 사람들이 알고 더 좋은 미래를 설계하는데 도움이 될것으로 확신 한다. 더욱 색여야 할 것은 안병태 제독과 정공훈 동문의 열정어린 국토 사랑과 우수한 묘목을 선정해 준 서창호 동문 표지석을 기증한 유청영 동문 월미도 일주 도로 관통을 위해 해군과 교섭한 정공훈 동문, 당시 실무를 맡았던 인고57회 동창회 회장 김현규와 총무 복성진외 허문명 김찬기 홍규선 김한경 이종화 김영린 오성근 동문은 중심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사람들이고 다수의 동문들이 솔선 참여하여 주었다. 따라서 이들의 희생적 이타적 정신을 여기 숨은이야기에서 기리고 싶다. 사람들은 세월 따라 사라지고 태어나지만 월미산의 모습은 변함 없이 벚나무와 함께 영원한 인천 시민의 쉼터로 오래 오래 남아 있으리라. 이 벚꽃은 내년에도 또 내년에도 대대로 찬연하게 계절 따라 피리라
2009년 6월5일 인고57회 동창회 총무 복성진
* 부기-류지현님
현장을 방문하고 몇가지 첨언을 했어요 그렇다보니 글 내용이 많이 길어 졌어요 그러나 사실적 역사와 진실을 기록하는 것은 우리들 세 대에 꼭 필요한 소명적 의무라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후배들에게 전 하고 싶습니다. 총총 2009. 6. 27 素剛 복 성진
댓글목록 0
임영섭님의 댓글
일본인들이 심고 일본의 국화인양 자랑하며.슬그머니 가져다가 자기네것인양 개량하고 우수품종으로 길러내--한국의 국화 무궁화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해도 될까요?
일본것 맞구요 무궁화가 그렇듯 벚꽃은 그 종이 무엇이든 일본의 소유물과 일본에서 유래된 꽃이라한들 반박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기무치 역시 같은논리
임영섭님의 댓글
굳이 사인간의 특허법과 상표권을 언급하지 않더라도,국가간의 권리와 이익 독점권과 관련한 이치는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불변의 진리이자 공식적으로 폭넓게 인정하는 약속입니다..무인도에서나 가능한 주장..남을 인정하고 내가 잘못하거나 무지해서 도둑질당하고 빼앗긴것에 대한 자기반성이 먼저겠죠
임영섭님의 댓글
물론 본문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는 옥의티를 잠시 태클 건 것 뿐이니. 결례를 너그러이 보아주시길..
좋은글 나누기 코너라 하길래 좋은글에 좋지못한 그리고 함량미달인 내용들에 일정 메스를 가하는 것 일 뿐.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다른코너라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래서는 안되겠죠..
태동철님의 댓글
생각이 좋으면 그 결과 도 좋은 열매로.. 우리 인고인은 교훈 [성실한 마음 가짐에서, 실무 역행의 가르침에서 좋은 생각을 배운바 실행한 자랑스러운 인고인,, 그 역사와 전통은 이여가리.
劉載峻님의 댓글
침묵은 금이라지요 아마, 일본 강점기를 체험한 57회 동문 선배 제위께 송구함을 그리고 체험 없는 입장에서 체험한 57회 선배분들께 감히 어찌 이런 내용을..글의 취지는 지역 사회 가꾸기 솔선 수범의 아름다운 활동상 소개이나 꼬리말은 요점조차 가늠치 못하는 영 고약하니 귓 등으로 흘려 보내야할 내용 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