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유비가 형주를 빌렸다(借)'고…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1. 3.11)
나채훈의 중국산책 /
'유비가 형주를 빌렸다(借)'고…
역사의 이야기를 빗대 어떤 상황을 함축 표현하는 예는 흔하다. ‘유비가 형주를 빌렸다(借)’는 말이 있다. 한마디로 돈을 빌려가서 갚으려 하지 않고 차일피일 시간을 끌어 뭉개려 할 때 중국인들이 비양거리듯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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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가장 흥미로운 사건이 적벽대전이고 이 싸움 직후에 어제의 연합군인 손권과 유비가 형주를 둘러싸고 욕심을 부리다가 서로 원수가 되는 과정 또한 흥미 만점의 사건이다. 지혜의 화신으로 불리는 제갈량을 비롯해 적벽대전의 승전장군 주유, 그리고 관우와 노숙, 유비와 손권 여동생의 정략결혼 등등 역사적 사실이 무엇이건간에 역사의 이미지에서 이 때처럼 풍성한 예도 별로 없을 정도다.
역사기록을 정리하면 남침해온 조조군을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 총사령관 주유가 적벽에서 화공(火攻)으로 물리쳤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형주를 손권과 유비 진영 모두 탐냈다. 제갈량은 꾀를 내 멀리 있는 파촉(오늘의 사천성)을 점령할 때까지 빌리자고 제안했다. “당신들에게는 강동(오늘의 남경과 상해 일대)땅이 있지만 우리는 마땅한 근거지가 없다. 파촉을 차지하면 형주를 돌려주겠으니 양해해주면 어떻겠느냐.” 손권은 여동생을 시집보낸 처지에서 이를 받아들였는데 주유는 제갈량같은 꾀보를 믿을 수가 없다고 도발을 계속하다가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아아 하늘이시여, 저를 낳고 어찌 제갈량을 보내셨나이까!” 뛰는 놈위에 나는 놈 있다는 이 절절한 탄식도 이 무렵의 일이다.
아무튼 얼마 후 유비가 파촉을 차지했고 손권이 형주를 돌려달라고 요구해왔다. 제갈량은 또 꾀를 내어 “잠시만 기다려달라. 한중(漢中) 땅을 차지하면 형주를 다스리는 관우 장군을 그리 옮겨주고 내드리겠다”고 했다. 얼마 후 유비가 한중땅을 점령했다. 손권이 다시 돌려달라고 하자 제갈량은 또 꾀를 내서 우선은 절반을, 나중에 나머지를 돌려주겠다면서 관우 장군을 사이에 놓고 잔머리를 꽤나 부렸다.
화가 치민 손권이 조조의 제안을 받아들여 형주공략에 나섰다. 이 때 제갈량은 또 꾀를 낸다는 것이, 관우에게 형주 북방에 있는 조조군의 양양성과 번성을 선제공격해 기선을 제압하면 조조와 손권의 연합을 깰 수 있다면서 공격명령을 내리게 했다. 초반에 관우군은 승승장구했으나 오히려 조조와 손권의 연합작전이 거세졌고 끝내 관우는 손권에게 붙잡혀 처형됐으며 형주는 손권의 차지가 됐다. 얼마후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다짐하며 손권 진영으로 쳐들어 갔다가 대패, 병을 얻어 죽은 일도 따지고 보면 형주를 둘러싼 갈등의 결말이나 다름없었다.
이 일을 두고 관제문화권(關帝文化圈)의 관우 신앙자들은 제갈량에 대해 눈을 흘기며 남의 돈을 빌렸다가 갚지 않는 고약한 행위에 대해 ‘유비가 형주를 빌렸다’고 야유를 던지듯 하는 것이다.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태국, 홍콩, 마카오 등 관우를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는 문화가 광범위하게 펼쳐진 지역에서의 이런 현상은 역사의 이미지를 뛰어 넘어 꾀를 내는 책사의 상징인 제갈량에 대해 혐오를 나타내는 경향까지 있다고 한다. 즉 제갈량이 관우를 거세하려고 치졸한 꾀를 부렸다는 투의 이야기다. 진실은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의 이미지는 지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먼 미래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형성하면서 본질을 규명할 수도 있고 뒤바꿔 놓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요즘의 복지제도를 둘러싼 논란의 경우도 별로 다를 바 없는 듯하다. 원래 복지는 보수세력이 사회안정을 위해 시작한 정책으로 진보진영에서는 사회의 아편으로 평가절하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와서는 복지가 마치 진보진영의 것처럼 인식되고 보수세력은 복지에 드는 비용 때문에 난색을 표하듯이 비춰지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복지의 원조이고 누가 빌려온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복지의 폭과 깊이가 점차 커지는 것에는 그 만큼의 능력이 뒤따라야 할테고 사회가 분배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복지는 정치인이 생색내는 일이 아닌, 풀어야할 숙제라는 사실이다. 복지재원을 만들어 내고 또한 복지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진정한 마음과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조돼야 마땅하다.
2011년 03월 11일 (금)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댓글목록 0
임영섭님의 댓글
복지의 폭과 깊이가 커지는것<소위 복지의 파이>에는 그민큼의 능력이 따라야한다는 당위성은 잘못된것--역으로 그만한 능력이 전제된 성숙한 사회이기에 복지담론의 확대를 논하는 것이고 능력이전의 의지가 선결조건으로 우선시되야한다는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근거.이는또한 방법상의 오류를 바로잡고자하는 추진동력
임영섭님의 댓글
사회가 분배문제를 해결못해서 복지문제가 겉돈다는 측면보다는 최고정책결정자들이 분배문제를 애써외면하고 등한시하며 불요불급함으로 침소봉대하는것이 문제를 더 어렵고 꼬이게 만드는 원인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물론 정제된 게재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