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장미 단상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1. 3.30)
장미 단상
/조우성의미추홀 ( 706 )
![]() |
조선 전기의 문신 강희안이 쓴 원예서에 '양화소록(養花小錄)'이란 것이 있다. 목판본 1책으로 된 저서인데, 노송, 국화, 매화, 석류화, 치자화, 산다화, 귤, 연화 등의 재배법과 화초에 얽힌 일화와 격언을 곁들였다.
이 책에 장미를 '가우(佳友)'라 하여 '화목 9등품계' 중 5등에 넣은 것을 보면, 오래 전부터 장미를 관상용으로 길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국세시기'에도 5월에 노란 장미꽃을 따 떡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럼에도 장미를 서양의 꽃으로 알고 있는 것은 개항 후 서양장미가 대거 들어와 다채로운 원예종 장미를 재배할 수 있게 된 때문이 아닌가 싶다. 더불어 영국의 나라꽃이 '장미'인데서도 비롯됐으리라는 생각이다.
고교 세계사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왕위를 놓고 랭커스터와 요크 가문이 싸운 전쟁을 이들의 문장(紋章)이 빨간 장미와 하얀 장미여서 '장미전쟁'이라고 했다는, 몰라도 그만일 서양사 상식까지 떠올렸을 것도 같다.
어쨌거나 미인박명이랄까. 장미의 운명은 요염한 자태와는 달리 처량해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인천에 와서는 느닷없이 '시화(市花)'로 불리고 있는데, 왜 '시화'가 됐는지는 시민도, 장미도 모르는 처지다. 그런데 이번엔 일본 대지진으로 수출길이 막힌 화훼농가들이 비명이다. 지진과 쓰나미와 방사선의 여파로 우리나라 장미들이 오갈 데가 없어진 것이다. 그같은 사정을 '장미는 슬프다'는 은유적 제목으로 보도한 신문이 있다. 1950년대 후반, 여우 김지미가 주연한 영화제목도 공교롭게 '장미는 슬프다'였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3월 30일 (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