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마라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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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1. 3.28)
마라톤
/조우성의미추홀( 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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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공식 마라톤대회는 1920년 조선체육협회가 주최한 '경성일주대회'였다. 그 후 1927년12월 제강상회(諸岡商會)가 인천-경성간 역전(驛傳)경주대회를 개최하면서 인천은 줄곧 마라톤으로 각광을 받았다.
본격적인 대회가 열린 것은 1930년4월 조선체육협회에 의해서였다. 대회명칭은 '경인간 왕복60리 역전 마라손대회'였다. 경성우편국앞을 출발해 인천세관 앞을 돌아가는 코스였는데, 매년 열려 전국적인 붐을 일게 했다. 인천에서 마라톤대회를 처음 연 것은 1935년 4월21일이었다. 40여명의 선수들이 조선매일신문사 앞을 출발하여 시내를 일주한 후 결승점인 월미도로 향했다. 동아일보인천지국 소속 소년 이안순이 우승해 화제를 모았다.
그 무렵에 마라톤붐이 크게 일자, 이색적인 '내한(耐寒) 마라톤'도 등장했다.
1936년 1월25일 인천환옥(丸玉)미두취인소에 근무하는 24세의 김용균이 혹한을 무릅쓰고 인천서 전남 여수까지 주파해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1930년대 하이라이트는 1936년 8월9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우승한 것이다. 전국민이 울었고, 인천 출신의 동아일보 이길용기자가 일장기를 말소해 인천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한껏 드높였다.
1940년, 인천 출신 마라톤선수가 등장했다. 현정효가 그 주인공이다. 마라톤대회의 대명사였던 '경인역전경주대회'에서 기량을 닦은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1950년대에는 인천공고 선수들이 이름을 날렸다. 그 맥을 이은 것이 본보 주최 '제11회 인천국제마라톤대회'였다. 총 1만2천800명의 건각들의 장한 모습에서 '건강 인천'의 내일을 엿보았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3월 28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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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님의 댓글
마라톤,보디빌딩은 정말 힘들어요 ㅎㅎ